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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적' 이성민 "기적은 분명 누구나에게 있을 거예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차가 아니면 시내까지 쉽사리 나올 수 없는 마을, 기차 외에는 세상과 소통하기 어려운 경북 봉화의 시골마을에는 지금도 하루 너댓번씩 기차가 ‘양원역’을 지나고 있다. 주민들이 청원하고 직접 작은 간이역을 만들기까지, 소소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이 이야기에 이성민이 힘을 보탠 것은 당연했다. 우리 고향 이야기 아닌가.



영화 ‘기적’은 1988년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 ‘양원역’을 모티브로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성민은 극중 기찻길은 있지만 기차역은 없어 철로로 오갈 수밖에 없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간이역을 세우는 게 유일한 목표인 준경(박정민)의 아버지 태윤을 연기했다. 경북 봉화 출신인 그는 동네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 즐거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야기도, 사투리도, 분위기도 딱이었다.

“감독님은 제 고향이 그쪽(봉화)인 줄 모르고 (시나리오를) 주셨다는데, 저는 알고 줬다고 생각했어요. 제 고향 이야기라 반가워서 하고 싶었고, 영화 이야기도 너무 재밌고 감동적이라 하기로 결정했죠. 시나리오 초고의 사투리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경상도 사투리였어요. 그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이게 아니라고 말했죠. 준경은 주로 영주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데, 초고에서는 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그렇게 큰 동네가 아니라고 했죠. 또 햄버거 집에서 햄버거를 먹길래 당시 햄버거 집이 별로 없었다는 등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참여했어요.”

본래 사투리를 사용했지만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이성민 또한 “사투리가 가물가물했다”고 전했다. 또 완전한 지역 사투리는 관객들이 알아듣기 어려울 것을 고려해 수정해 표현했다.

“저도 그쪽 (봉화) 말을 쓴 지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했어요. 또 옛날 (고향) 말을 기억해 내는 데 시간이 걸렸고. 고향 말을 지도해 주는, 최근까지 그곳에서 살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통해서 검증도 받고 조언도 받으면서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또 어떤 지점에선 감독님이 ‘이걸 알아들을까요?’라고 했던 것도 있어요. 그런 부분은 다른 지역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감독님이 수정을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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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태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시간표를 칼같이 지키는 원칙주의자 기관사다. 아들에 대한 표현이 서툴고, 좀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 무뚝뚝한 현실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다. 그런 태윤의 모습은 이성민과 비슷했다. 그는 “무뚝뚝한 부분은 나와 많이 닮았다”면서도 “딸에게는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태윤의 무뚝뚝한 지점, 말이 별로 없는 지점은 저와 비슷한 점이 있어요. 저는 ‘우리 아버지처럼은 안해야지’하는 생각을 했어요. (딸과)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스킨십하려고 애썼죠. 좀 더 친구 같고, 친근하고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애가 다 알고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저는 좋은 아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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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은 무뚝뚝한 표정 속에서도 감정 변화를 디테일하게 그리며, 관객들이 아버지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태윤을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몰입했다.

“저도 아들일 때 ‘아버지가 왜 그렇게 표현이 서투셨고 다정하지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을 안 해봤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 아버지도 내가 모르는 아픔, 사연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한테 그랬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 속 부자(父子) 역할로 호흡을 맞추는 이성민과 박정민의 인연은 과거 차이무 극단에서 시작됐다. 이성민은 “당시 배우가 아닌 캠코더를 들고 다니는 학생이었다”며 박정민과의 인연을 회상했다.

“박정민이라는 배우는 어릴 때 연기를 안 하고 학교 다닐 때 봤어요. 캠코더를 들고 극단을 왔다 갔다 했죠. 영화과인데 연기를 한다는 아이였어요. 얼굴도 그냥 평범한 듯 보이는 아이였죠. 감독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정민은 이번에 ‘흰쌀밥 같은 연기’를 보여줬는데, 전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던 배우가 이렇게 ‘흰쌀밥 같은 연기’를 하는 걸 보면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내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상대 배우의 몰입도를 이끌어내는, 집중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가진 배우에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앞으로 훌륭한 배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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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직후부터 작품에 대한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잔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파를 그려 지루함을 자아낼 수도 있지만, ‘기적’은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에 이성민은 연출을 맡은 이장훈 감독에게 그 공을 돌렸다.

“감독님은 촬영할 땐 못 느꼈는데 영화 본편을 보고 천재라는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계산을 명확히 하시는 연출자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희극에서 비극으로 넘어가는 지점이 인상 깊었어요. 집중력도 잃지 않게 하고, 몰입감을 끌고 가는 지점이 ‘이 사람이 대단한 연출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이 영화도 웃다가 울리는 영화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런 지점 때문에 관객들이 신파가 심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해 가는 그의 연출력이 감탄스러웠어요.”

작품이 그리는 ‘기적’은 단순히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바로 이뤄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내포하는 의미의 ‘기적’, 준경이 바라는 ‘기적’처럼 이성민 배우에게도 ‘기적’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적’ 같은 순간으로 자신을 배우의 길로 이끌어준, 버스에 붙어 있던 연극 단원 모집 공고 포스터 본 순간을 꼽았다.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를 촬영하면서까지 준경의 이야기는 저랑 연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감독님이 ‘이건 꿈에 대한 얘기다’고 하시는 순간 ‘준경이라는 캐릭터와 내 삶이 굉장히 많이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준경이와 같은 고향이고, 준경이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고, 저도 그 시골에서 기적 같은 일로 배우가 됐으니 저한테도 기적이 일어난 거죠. 인생을 돌아보면 삼십몇 년 전 재수시절, 그때 그 순간 그 자리에 섰던 (연극 단원 모집 포스터가 붙어있던) 버스는 저에게 ‘기적의 순간이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요. 기적은 분명히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한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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