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가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휩싸인 지 20일이 지났다. 이 의혹은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후보가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을 통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당시 열린민주당 비례후보)와 MBC·뉴스타파 기자 등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내용이다.
의혹의 핵심은 손 보호관이 관련 고발장을 작성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송파갑 후보)에게 전달했는지, 윤 후보가 이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앞으로 규명이 필요한 사항을 정리해봤다.
◇드러난 사실은
제보자 조성은(33)씨가 공개한 텔레그램 캡쳐 화면에 따르면 김 의원은 지난해 4월3일과 4월8일 두 차례에 걸쳐 조씨에게 텔레그램으로 사진파일을 전달했다. 최 대표 등에 대한 고발장 2개과 ‘제보자X’ 지현진씨의 페이스북 캡쳐 사진 등이다. 김 의원이 조씨에게 보내온 사진파일 위에 ‘손 준성 보냄’이라고 쓰여 있다. 또 “제보자X가 지현진임”이라는 메시지에도 ‘손 준성 보냄’이라는 표시가 달렸다.
인터넷 언론 뉴스버스는 지난 2일 사진파일 최초 송신자로 손 보호관을 특정해 보도했다. 이후 조씨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손준성 보냄’의 프로필 배경화면 사진과 손 보호관의 휴대전화 번호의 텔레그램 계정 프로필 배경화면 사진이 동일하게 나온 카카오톡 대화 캡쳐 화면을 공개했다. 즉 조씨가 공개한 자료에 조작이 없다는 전제 하에, 조씨가 김 의원으로부터 받은 사진파일의 최초 업로더가 손 보호관 계정이라는 사실은 확인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조씨는 10일 JTBC에 출연해 김 의원이 사진파일을 보낸 뒤 전화로 “(고발장을) 꼭 대검찰청 민원실에 접수해야 하고, 중앙지검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윤 후보의 대척점에 있던 이성윤 중앙지검장을 피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요구가 있었다는 취지다. 다만 이는 조씨의 기억에 의존한 진술이다. 조씨는 이 통화를 녹음해두지 않았다.
그러나 손 보호관은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고발장 및 첨부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입장이다. 또 김 의원은 누군가에게 고발장을 받아 김씨에게 전달한 사실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간 전달자 있었나
손 보호관과 김 의원 사이 한 명 이상의 중간 전달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손 보호관이 A란 사람에게 사진파일을 보냈고, A가 B에게 사진파일을 전달했고, B가 다시 김 의원에게 사진파일을 전달한 경우에도 사진파일에는 ‘손 준성 보냄’이라고 표시된다.
만약 손 검사가 사진파일을 누군가에게 전달받아 다시 검찰 외부 사람에게 단순 참고용으로 전달했고, 그 외부 사람이 본인의 의지로 김 의원에게 전달했다면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
◇작성자는 누구인가
고발장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조씨가 받은 사진파일만으로는 작성자의 신원이 추정되지 않고 있다. 최초 작성자는 손 보호관일 수도 있고, 손 보호관 휘하 검사나 수사관일 수도 있고, 수사정보정책관실 바깥의 다른 검찰 인물일 수도 있고, 검찰과 관계 없는 제3자일 수도 있다.
즉 검찰 밖에서 고발장이 작성됐고, 손 보호관은 이를 누군가에게 받은 뒤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손 보호관이 어떻게 그 고발장을 입수했는지, 또 고발장 등을 찍은 백수십개의 사진파일을 왜 본인 휴대전화에 저장했다가 누군가에게 보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윤석열은 관여했나
윤 후보가 고발장 작성·전달을 지시했는지, 혹은 인지했는지와 관련한 증거는 공개된 것이 없다. 단지 손 보호관이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했다면, 검찰총장의 ‘눈과 귀’ 역할인 수사정보정책관이었던 손 보호관이 윤 후보에게 보고를 안했겠냐는 의심이 있을 뿐이다.
또 4월3일 고발장이 윤 후보의 부인 관련 보도를 문제 삼고 있으며 부인의 혐의 없음을 단정하고 있기에 윤 후보와 상의 없이 만들었겠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반대로 손 보호관이 윤 후보에 대한 과잉충성으로 독자 행동을 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등 일말의 증거 없이 추정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누가 당에 전달했나
김 의원이 조씨에게 4월8일에 전달한 고발장과 유사한 고발장이 국민의힘에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미래통합당이 지난해 8월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이 조씨가 김 의원에게 받은 고발장과 내용이 유사하단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언론 취재 등을 통해 당시 당 법률지원단장이던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들어온 파일 형태의 고발장이 정점식 의원→당 당무감사실장→조상규 자문위원(변호사) 순으로 전달돼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 의원실에 고발장 파일을 전달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조씨는 김 의원에게 받은 고발장을 당에 전달하지 않았다고 밝힌 상태다. 정 의원실 측은 지난해 8월께 고발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나 누구한테 받았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TV조선이 9일 공개한 정 의원실 고발장 파일 정보를 보면 작성 일자는 지난해 4월22일, 수정 일자는 지난해 5월11일이다. 이를 보면 누군가가 고발장 사진파일을 받아 지난해 4월22일 문서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김 의원이 조씨 외 다른 당 사람에게 전달했을 가능성,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손 보호관이나 제3자가 당 사람에게 전달했을 가능성, 혹은 고발장 최초 작성자가 전달했을 가능성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다.
◇'제보 사주' 있었나
박지원 국정원장의 ‘제보 사주’ 의혹도 불거졌다. 10일 TV조선이 박 원장과 조씨가 8월11일 만났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다. 이는 조씨가 뉴스버스 기자와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이야기 나눈 뒤 이뤄진 만남이다. 이에 국민의힘과 윤석열 캠프에서는 조씨가 박 원장과 제보 여부와 시점을 상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조씨가 박 원장과 만나기 전날 김 의원과 텔레그램 대화방을 캡쳐하고 사진파일을 다운로드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 의혹에 불이 붙었다. 정치권 일각에서 홍준표 후보 캠프의 이필형 본부장이 해당 만남에 동석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박 원장과 조씨는 이 본부장이 동석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제보 내용을 상의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도 만남 당일 자신의 행적을 공개하며 동석설을 부인한 상태다. 이들의 부인을 뒤집을 물증은 현재까지 알려진 게 없다.
◇수사·조사 상황은
수사는 손 보호관과 김 의원에 집중돼 있다. 앞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김 의원과 손 보호관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하지만 휴대전화에서 관련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의원은 휴대전화를 두세 차례 바꿨다고 밝힌 바 있다. 손 보호관은 아이폰을 쓴다. 만약 손 보호관이 공수처에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열어보지도 못할 수 있다.
국민의힘 공명선거추진단은 정 의원실에 들어온 고발장 파일 출처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다만 공명선거추진단은 아직 어떠한 조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JTBC는 15일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최강욱 고발장’이 당에 들어온 것은 확인됐다” “‘당시 고발장을 전달받았다’는 복수의 당 관계자들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공명선거추진단장인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제보 사주’ 의혹도 사건화된 상태다. 윤석열 캠프가 13일 박 원장과 조씨, 그리고 성명불상자 1인을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하면서다. 공수처가 이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