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르면 다음 달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신규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부지 확정, 핵심 반도체 고객사와의 협력 논의, 백신 기술 확보 등 다양한 현안을 현지에서 점검할 것으로 관측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이르면 오는 10월 미국 출장길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의 미국행은 지난 8월 가석방 이후 첫 해외 출장이다. 그는 신규 반도체 설비 투자, 국내 백신 생산 기술 확보 등의 사안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 현지 출장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삼성전자의 신규 반도체 설비 투자 여부를 최종 결정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삼성전자는 5월 미국에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해 텍사스 오스틴 공장에 이은 제2 파운드리를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텍사스주 테일러와 오스틴, 애리조나주 굿이어와 퀸크리크, 뉴욕주 제네시카운티 등 미국 내 5개 지역과 부지 선정 협상이 진행되는 단계다.
이 가운데 최근 테일러시가 구체적인 파운드리 부지를 공개하고 텍사스주 윌리엄슨카운티 법원과 시 의회가 각종 세제혜택안을 승인하면서 유력한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테일러시를 직접 방문해 공장 설립을 확정하고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세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테일러 방문과 함께 현지 핵심 반도체 고객사 관계자와 만나 협력을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운영 중인 텍사스 오스틴 파운드리 주변에는 엔비디아·퀄컴 등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회사가 있다. 삼성전자의 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파운드리 고객사이기도 한 이들 회사의 고위 임원들과 직접 만나 향후 파운드리 협력을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신규 고객으로서 반드시 포섭해야 할 빅테크와의 협상도 이 부회장이 미국행을 단행하는 이유로 꼽힌다. 특히 현재 자율주행 기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테슬라·페이스북·구글처럼 해당 분야의 기술을 선도하는 빅테크와 손잡고 시장을 공략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이 부회장이 미국 정보기술(IT) 공룡 기업 CEO들과 만나 향후 협력 관계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방미를 검토하는 이 부회장의 또 다른 큰 과제는 코로나19 백신 확보다. 지난달 이 부회장의 가석방과 관련해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국익을 내세우며 반도체와 백신을 꼽았다. 사실상 모더나 백신 수급에 역할을 하라는 얘기다. 이 부회장의 숙제는 단기적으로는 모더나 백신의 빠른 수급, 중장기적으로는 백신 제조 원천 기술 확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분기에 모더나 백신 상업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특히 국내 생산분의 국내 우선 공급, 백신 핵심 기술 이전 등 아직 확정하지 못한 사안들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국내에서 위탁 생산하는 일부 물량을 국내용으로 돌리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삼성바이오는 모더나로부터 백신 원액을 받아 이를 작은 병에 담고 포장(DP)하는 역할만 한다. 삼성바이오가 모더나로부터 원액생산(DS) 기술까지 이전받는다면 한국의 자체 백신 수급이 가능해진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모더나 최고위층 관계자와 만난다면 백신 확보와 기술 이전이 가장 핵심적인 안건이 될 것”이라며 “삼성 차원에서 모더나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협상의 열쇠”라고 전했다.
한편 이 부회장의 가석방 이후 해외 출장은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법무부가 유권해석을 통해 삼성전자 대주주로서 경영 활동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 달 미만의 해외 출장은 별도의 신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미국 출장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