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다시 꺼내들자마자 북한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9월 23일 리태성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시작으로 김여정, 김성 주유엔대사, 그리고 9월 29일 김정은의 시정연설에 이르기까지 일주일 동안 다섯 차례의 입장이 쏟아졌다. 모두 북한의 일방적 주장이다. 하지만 그동안 침묵해 왔던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명확하게 알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의 선결 조건으로 ‘불공정한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를 주장한다. ‘한국의 군사력 증강은 괜찮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자위권 차원의 행동은 도발이라 매도하는 이중기준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한미연합훈련과 미국 전략자산 전개를 영구히 중단하는 것이 선결 조건 충족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간절히 원하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을 당근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북한이 운운하는 이중기준은 말이 안 된다. 유엔 안보리가 불법으로 규정하고 제재를 가하고 있는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이, 국제적으로 완벽하게 합법인 대한민국의 군사력 증강과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그럼 2년 반 만에 김정은까지 나서, 강도 높은 대남 평화공세를 재개한 속내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북한은 종전선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종전선언은 남북한 외에 미국까지 함께 해야 하는데 미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만약 종전선언을 성사 시키려 했다면 종전선언은 상징적인 정치선언이라는 문 대통령 말에 맞장구를 치고 미국을 기만하는 게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끝나기 전에 한미동맹에 확실히 구멍을 내려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으로 잠정 중단 상태인 한미 연합훈련을 영구 중단 시키고 핵우산의 핵심인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못하도록 하면 한미 연합방위태세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북한은 자신들은 미국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데 한반도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이중기준이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셋째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기 위해 ‘약한 고리’인 한국을 먼저 공략하기로 한 것 같다. 북한은 상호 존중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북한의 핵 개발을 자위권으로 강변 하면서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균형을 파괴하지 말라’며 우리의 정당한 방위력 증강에 본격적인 시비를 걸어 왔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을 문제 삼지 말라는 겁박도 모자라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겠다는 도둑놈 심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북한이 내건 이른바 ‘선결 조건’은 하나같이 우리 안보와 한미동맹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칠 내용들이다. 그걸 알면서도 정상회담에 미혹되어 종전선언을 계속 추진한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 정부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