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방탄소년단(BTS)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유엔총회까지 동행하며 민간 외교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외교관 여권을 받아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하는가 하면 문 대통령과 함께 미국 현지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BTS가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목도를 단연 높였다는 평가다. 다만 야권 등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BTS의 인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잇따라 내놓았다. 진정한 외교·안보를 추구하지 않고 BTS를 앞세운 ‘쇼’만 한다는 비판이었다. 청와대는 이에 “문 대통령과 BTS의 유엔총회 참석은 별개”라며 적극 반박했다. 모든 외교 행보는 ‘BTS가 국익을 위해 스스로 결정한 일’이란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었다. BTS가 공식적으로 ‘대통령 특별사절’이 된 만큼 앞으로 추가적인 특사 활동이 있을 때마다 이들의 의지와 무관한 정치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文대통령, BTS 특사 임명…외교관 여권도 지급
BTS의 외교 행보는 지난달 14일 문 대통령이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당시 수여식 후 환담에서 “다들 정말 잘 생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참 잘생겼다”며 BTS를 맞았다. 문 대통령은 이어 “최근에 ‘Butter(버터)’가 빌보드 차트에서 도로 역주행해서 다시 1위 탈환한 것, 미국 MTV 뮤직어워드에서 3관왕 차지한 것 축하한다”며 “그 가운데 올해의 그룹 분야는 우리 블랙핑크하고 경합했다고 보도가 나온다. 한국 팝의 유력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는 우리 BTS의 팬이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참 고마운 것이 우선 첫 번째는 우리 K-팝과 K-문화 이런 위상을 정말로 더없이 높이 이렇게 올려줌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의 품격을 아주 높여 준 것”이라며 “K-팝뿐만 아니라 K-드라마, 영화, 게임들, 웹툰 등 한국의 콘텐츠들이 지금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를 우리 BTS가 잘 이끌어 주고 있다. 덕분에 화장품 수출도 사상 최대를 기록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지금 코로나 상황 때문에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 젊은이들에게 항상 공감하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음악을 통해서, 여러 메시지를 통해서, 행사를 통해서 힘을 주는 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외교에 굉장히 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언급도 했다. 문 대통령은 “외국 정상들 간에 만나서 서로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나는 항상 K-팝 이야기를 듣는다. 대부분 우리 BTS 이야기다. 정상들 자신이 ‘BTS 팬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좀 적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우리 손자들이 BTS를 너무 좋아해서 따라 부르고 춤도 같이 춘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은 물론 중동 지방에 이르기까지 (인기가) 굉장하다. 심지어는 정상이 ‘국빈 방문할 때 BTS가 함께 와서 K-팝의 밤을 한번 열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유엔에서 SDG(지속가능발전목표)를 위한 특별행사를 여는데 전 세계 청년들을 대표해서 BTS가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해왔다”며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대단히 높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숙 여사는 “우리 세대는 팝송을 들으며 영어를 익혔는데, 요즘 전 세계인들은 BTS의 노래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익히고 있다”고 BTS를 치켜세웠다.
BTS 리더인 RM은 이에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영광”이라고 답했다.
BTS, 미국 순방 곳곳에서 文대통령 주목도 높여
BTS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76차 유엔총회에 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는 것으로 특사 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특히 20일(현지시간) 열린 ‘SDG 모멘트(Moment)’ 개회식에 문 대통령과 함께 등장해 지속가능발전과 미래 세대 메시지를 던졌다. 문 대통령에 이어 연단에 오른 BTS는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웰컴’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유엔총회장에서 영상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미국 뉴욕 유엔사무국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서도 BTS를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구테흐스 사무총장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논의한 뒤 ‘SDG 모멘트’에 BTS가 함께할 수 있도록 지원해 미래세대와 소통하는 노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총회 성공을 기원한다”고 말하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미 행사(SDG 모멘트)를 성공적으로 치러서 총회가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며 “내가 연설했으면 (BTS와 같은) 그런 파급효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BTS는 21일 문 대통령과 함께 미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인 ABC 방송에도 출연했다. 24일 공개된 ABC 방송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BTS가 유엔총회장에서 불렀던 ‘퍼미션 투 댄스’를 두고 “노래도 아름답고 안무도 아름답지만 차이를 뛰어넘는 통합이라는 메시지를 세계인들에게 전달해 줬다”고 치켜세웠다. 문 대통령은 이어 엄지손가락을 펴고 다른 손가락들을 살짝 구부린 채 양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상체를 긁는 듯한 동작을 선보이고는 BTS 멤버들에게 “이런 게 있죠”라고 물었다. 이 동작은 BTS가 ‘퍼미션 투 댄스’에서 선보이는 안무 중 하나였다. ‘즐겁다’는 뜻의 국제 수화를 활용해 만든 안무다. BTS 멤버들이 수화를 활용한 다른 2개의 안무 동작으로 화답하자 문 대통령과 앵커인 주주 장(한국명 장현주)도 이를 따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BTS는 이밖에 문 대통령 미국 순방 기간 김정숙 여사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행사에 참석하고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따라 뉴욕한국문화원 전시회를 찾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2일 미국 하와이에서 귀국길에 오르면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BTS가 유엔총회장을 무대 삼아 ‘퍼미션 투 댄스’를 노래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우리의 새로운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였다”며 “BTS에게 고맙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특별히 전하고 싶다”고 재차 강조했다.
2018년부터 靑 인연 이어져…野 “쇼 그만” vs 與 “아미에 사과하라”
청와대 행사에 BTS가 등장한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BTS는 2018년 9월 제73차 뉴욕 유엔총회 당시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청소년 어젠다인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 참석한 김정숙 여사를 만났다. 이어 한 달 뒤인 그해 10월 문 대통령 내외 프랑스 파리 순방 도중 BTS가 출연한 한·불 우정콘서트를 관람하며 인연은 이어졌다. 김 여사는 공연장에서 환호를 보내며 팔과 몸을 흔들었고 공연 뒤 문 대통령과 함께 멤버들을 포옹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2019년 6월 유튜브 채널인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해 “BTS가 고맙게도 대통령 시계로 비용을 퉁 쳐줬다”며 섭외 뒷얘기를 밝히기도 했다. BTS는 지난해 9월에도 청와대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날 행사에도 참석해 메시지를 냈다.
야당은 이번 문 대통령과 BTS의 유엔 활동을 곧바로 평가절하했다. 국민의힘 강민국 원내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미국의 홀대에도 참석을 강행한 이유는 유엔총회장에서 연설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과 세계적 가수 BTS가 채운 ‘쇼’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제 쇼는 그만하고 진정한 국가안보를 챙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과 청와대는 이에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 전수미 상근부대변인은 24일 논평에서 “대한민국의 자랑인 BTS의 유엔 연설을 ‘쇼’로 폄하한 국민의힘은 BTS와 그 팬클럽 아미에 깊이 사과해야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BTS의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려 한 순수한 의도를 폄훼하고 모욕하는 국민의힘의 발언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같은 날 KBS 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청와대 행사나 해외 행사에 BTS의 인기를 너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BTS와 함께한다고 정치적 인기가 높아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국민들께서 구분하실 것이라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각각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별도로 초청을 받은 것”이라며 박 수석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BTS는 미래 세대 대표로 초청받은 것이고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 때문에 초청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초청에 연관 관계가 있다고 해석하는 건 너무 야박한 평가”라며 “BTS가 초대돼 청년 세대 대표로 연설을 했다는 것에 매우 자랑스럽고 가슴 설렜다. 사전 제작된 영상을 유엔의 시설에서 찍었다는 것도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달 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가 BTS를 유엔 총회에 참석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 아닌가.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하자 “BTS도 (이번 참석을 통해) 엄청나게 성공했다고 본다”고 반발했다.
여비 미지급 논란까지…탁현민 “지긋지긋하다, 밤새 분노”
문 대통령과 BTS 논란은 여비 미지급 보도로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30일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 받은 ‘UN 총회 참석 관련 지출 비용 내역’을 근거로 외교부가 BTS에게 아무런 여비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BTS에게 정당한 대우 대신 또 다시 ‘대통령 시계’만 줬다는 취지였다.
이에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 캠프의 백지원 대변인은 “2018년 문 대통령 파리 순방 당시에도 BTS를 무급 차출한 바 있다”며 “매번 BTS 후광을 등에 업고 이미지 정치를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후안무치할 수가 있나. 문 대통령, 숟가락 좀 그만 얹으시라. 더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등골을 빼먹지 마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순방에 함께한 특사단의 항공과 체류 비용 일부를 사후 정산 형식으로 진행했다”며 “이미 정산 완료한 상태이고 이것은 정부와 하이브(BTS 소속사)가 사전에 협의한 사항”이라고 반박했다. 30일 기준으로 BTS에 여비를 ‘지급’하지는 않았지만 지급을 위한 계산, 즉, 정산은 마쳤다는 의미였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 역시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조선일보가 악의적인 오보를 내고 그 내용을 일부 정치인이 받아서 확대 재생산하는 지긋지긋한 일들이 또 한번 반복되었다”며 언론사와 최 전 원장 측을 모두 비판했다. 탁 비서관은 “오보와 오보를 바탕으로 한 주장이 무색하게도 BTS의 행사 참석과 규정 내 비용은 이미 지급됐다”며 “언론과 정치권이 근거 없는 거짓말과 무지함으로 대통령 특사와 정부를 폄훼하는 못돼먹은 버릇은 언제나 고쳐질는지 참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탁 비서관은 1일에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를 갖고 “밤새 분노가 치밀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탁 비서관은 “BTS 멤버들은 ‘돈을 10원짜리 안 받겠다’고 얘기했는 데 억지로 준 것”이라며 해당 계약 금액에 대해 “7억원대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도 BTS의 연락을 받았다며 “열심히 한 게 다 날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더라. 그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일 페이스북에서 “조선일보가 문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깎아내렸다”며 “얼마 전에는 내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일한다는 가짜뉴스를 내보내더니 이제는 우리 국민과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BTS까지 정쟁 도구로 끌어들였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TS가 갖춘 문화적·외교적 파급력은 한국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가 힘든 만큼 정부는 앞으로도 이들의 외교 역할을 기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현 정부든, 차기 정부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BTS와 같은 세계적 가수에 기댄 외교 활동에는 정치적 해석의 꼬리표가 붙을 수 있음을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자칫 진영 간 공방이 과열돼 아무 죄도 없는 BTS까지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결과를 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