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벼랑 끝에 내몰린 두 남자가 있다. 죄수번호 203(최민식 분)은 오랜 기간 복역하며 나이를 먹었고, 출소해 딸을 만나는 게 유일한 삶의 목표지만 뇌종양으로 남은 삶이 2주밖에 남지 않았단 말을 듣는다. 난치 희귀병 환자 남식(박해일 분)은 돈이 없어 병원을 돌아다니며 약을 훔쳐 생을 연명하다가 이를 들키게 된다. 203은 탈출하다가 우연히 남식과 만나게 되고, 다른 길이 없었던 두 사람은 도망친다. 이 과정서 조직의 검은돈까지 손에 넣게 된다. 조직의 보스 윤여사(윤여정 분)는 하수인들에게 돈을 찾아오라 하고, 경찰들도 탈옥수의 뒤를 쫓는다.
6일 개막하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는 203과 남식, 두 남자가 거액의 돈을 손에 넣으며 벌어지는 특별한 동행을 그리는 로드무비다. ‘돈의 맛’, ‘하녀’, ‘그때 그 사람들’ 등의 임상수 감독이 6년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관심을 모았으며, 지난해엔 2020 칸영화제의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냉소적이고 비판적 면모와 상반되는 따듯하고 착한 시선으로 삶과 죽음, 돈,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그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냉소적 영화를 만든다고들 하지만 선량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농을 던지며 운을 뗐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많아진다”며 “그런 느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작중 인물들은 돈을 놓고 거듭해서 쫓고 쫓기며 다툼을 벌이지만 그 모습은 임 감독의 전작들에서 드러나는 추한 이전투구와 거리가 멀다. 돈은 이 작품서도 주요 소재지만 결국 그 행방은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 된다. 두 주인공은 초반만 해도 같이 있다는 사실 외엔 공통적 요소가 없었지만 죽음의 공포를 상시 가지고 산다는 점에서 교감하게 된다. 둘을 추격하는 조직의 하수인조차 두 사람의 사연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임 감독은 “돈과 죽음이라는 요소들이 전작들과 연관되긴 하지만 확연히 다른 종류의 영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민식·박해일 두 주연배우는 이 영화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지만 오래 전부터 익숙한 듯 자연스러운 느낌을 전한다. 최민식은 박해일에 대해 “작품을 통해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낯설지 않고 너무 익숙해서 신기했다”며 “둘 사이에 술병이 많이 쌓였다”고 돌아봤다. 박해일도 “최민식 선배님과 언제 한번 볼 수 있을까 생각한 게 15년이 넘었다”며 “호흡 하나하나에 리액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화답했다. 윤여정을 비롯해 윤여사의 딸로 분한 이엘, 경찰서장 역할의 김여진, 203의 딸을 연기한 이재인 등 중요한 여성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면서 두 남자 주인공의 로드무비라는 장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였다는 게 임 감독의 설명이다.
한편 이 영화는 독일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영화 제목과 같은 ‘행복의 나라로’를 비롯해 ‘하루 아침’, ‘바람과 나’ 등 후배 음악인들이 부른 작품 속 한대수의 곡들은 따듯한 정서를 환기하며, 원작 격인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밥 딜런의 음악이 흐르던 것과 대구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