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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생보業 3중고에 탈출구 찾는 외국계 생보사…M&A시장 불붙나

[라이나생명, 美처브그룹에 팔린다]

亞太 보험시장 정리하고 헬스케어 중심 사업 방점

비중 컸던 韓 사업도 정리...IFRS17 영향 받은 듯

디지털 손보사 추진 여부는 새 주인 '처브' 손으로





라이나생명의 모기업인 미국 시그나그룹이 아시아태평양 내 보험 사업을 정리하고 헬스케어 전문 사업으로 변신을 꾀한다. 글로벌 생명보험 업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외국계 금융사들은 성장성이 낮은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대신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동안 잠잠했던 국내 생명보험사 인수합병(M&A) 거래에 라이나생명 매각이 불을 지필지 주목된다.



8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라이나생명의 모기업인 시그나그룹은 한국을 비롯해 대만과 태국·인도네시아·홍콩·뉴질랜드 등 아태 지역 보험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한다. 시그나그룹이 보유하던 해당 지역 보험사는 미국의 기업보험 전문 회사 처브가 6조 8,700억 원(약 57억 5,000만 달러)의 가격으로 인수한다. 처브 그룹 소속인 국내 처브라이프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아시아 시장 확대와 개인보험 확장이라는 그룹 전략 차원에서 추진하게 됐다”며 “라이나생명과 처브라이프는 각각 텔레마케팅(TM) 채널, 대면영업 중심이기 때문에 합병시 채널 충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그나는 2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보험사로, 기업에 원격진료와 건강 평가 및 관리, 보험 약제 관리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올린다. 생보사들이 개인에게 의료비 보장 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번 매각의 배경 역시 보험사들의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의료 서비스 분야에 주력하기 위해서다. 시그나 측은 라이나생명 임직원을 대상으로 이날 발송한 공식 입장문을 통해 “유럽과 미주·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전략적 초점을 강화하는 한편 간편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매각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계획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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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가 전통 보험에서 헬스케어로 방향을 튼 것은 헬스케어가 수익 사업으로 부상해 보험 업계의 전 세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면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한 건강관리 등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9월 시그나는 헬스케어 플랫폼인 ‘튠(TUNE) H’를 출시하면서 라이나생명을 통해 국내시장에서도 이를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서는 KB손해보험이 업계 최초로 금융 당국으로부터 헬스케어 자회사 설립을 승인받아 이달 중으로 ‘KB헬스케어’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1987년 라이나생명을 통해 진출한 후 30여 년간 활발히 활동했던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배경도 주목된다. 라이나생명은 시그나그룹의 아태 사업 거점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 매각 대상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높은 핵심 자산이다. 거래 규모가 7조 원 수준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라이나생명의 가치는 절반인 4조 원에서 평가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보험 계열사를 한번에 묶어 처분하기는 하지만 주요 사업 지역이었던 한국의 생명보험 업황이 이번 매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보험 시장의 성장세 둔화와 함께 본사 현지, 그리고 국내 자본 규제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23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국내 생보 업계는 저출산·저성장으로 위축되고 있는 데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자산 운용 등 수익성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이나생명은 안정성 지표는 업계 최고 수준이지만 재무적 부담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생명보험협회 월간생명보험통계에 따르면 7월 기준 라이나생명의 총자산은 5조 3,612억 원으로 업계 20위에 머물렀다. 반면 같은 기간 누적 당기순이익은 1,651억 원으로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한화생명에 이어 네 번째로 크다. 자산 규모는 대형사들에 비해 작지만 높은 수준의 이익을 내고 있다. 보험회사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인 보험금 지급여력(RBC) 비율도 2분기 말 기준 348.5%로 우수한 편이다. 저축성 보험을 많이 판매한 국내 보험사들과 달리 보장성 보험에 집중해 회계 기준 변경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도 적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생보사들 입장에서는 IFRS17 도입으로 인한 자본 확충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각 결정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매각을 시작으로 국내 외국계 생보사들의 매각에 속도가 붙을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메트라이프생명·AIA생명·동양생명·ABL생명 등 외국계 생보사들의 매각설은 꾸준히 있어왔다. 다만 생명보험사의 원매자로 거론되는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생보사보다 손보사 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외국계 생보사들의 M&A는 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매각으로 시그나그룹이 공언한 국내 디지털 손보사 설립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규 사업 추진 여부는 새 주인이 되는 처브그룹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생보사 입장에서는 디지털 손보사와 헬스케어는 중요한 흐름이기 때문에 향후 재추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윤희·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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