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단계적 일상 회복의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아직 코로나19 확진자가 2,000명을 상회하고 감염재생산지수도 1을 넘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단계적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불안하다. 가능성의 희망과 만일의 불안이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 백신이 나오면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는데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진단은 이렇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 특히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감염률이 높아서 확진자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백신 접종 이후의 돌파감염 발생이다. 백신 접종이 만능 해결사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정은 영국과 싱가포르처럼 백신 접종이 조기에 실시되고 접종률이 높은 나라에서도 확진자가 확연히 줄여들지 않는 점에서 확인된다. 결국 코로나19가 극성일 때 백신 접종률이 70%에 이르면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고 불안한 희망과 답답한 우려가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또 하나의 원인을 놓치고 있다. 바로 코로나19와 관련된 각종 통계 지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인식의 문제다. 코로나19 상황이 매일 발표될 때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공개된다. 지금까지 확진자는 32만 5,800여 명을 웃돌고 있고, 사망자는 2,544명에 이른다. 숫자 자체만 놓고 보면 확진자 수는 전 국민의 1%도 되지 않는다. 사망률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숫자에만 주목하면 우리는 코로나19에 대해 느긋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 듯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 정부 방역 정책과 국민의 불안은 과도한 공포에서 비롯된 과잉 반응일까 아니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적절한 긴장일까.
‘1% 미만’과 ‘다른 나라보다 낮은 사망률’이라는 수치에 대해 방역 당국은 우리가 코로나19 상황에도 선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민은 ‘내가 언제든 감염될 수 있고 백신 접종 이후에도 큰일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수치에 대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통계상 수치를 제시하며 방역 방국이 안전하다고 말해도 “내가 또 내 가족이 적은 수치의 해당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은 결코 줄어들 수가 없다. 방역 상황을 보여주는 통계 수치의 추이를 거시적으로 관리하는 일만큼 수치 해당자 또는 해당 우려자의 불안을 미시적으로 돌봐야 한다. 즉 거시적 지표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만큼이나 미시적 불안에 대한 섬세하고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백신 접종 이후 중증 환자나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그것이 백신 접종과 인과관계가 없다는 설명 또는 통보만으로는 수치 해당자를 납득시킬 수도, 위로할 수도 없다. 사망자가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그 가족은 하루아침에 하늘이 무너지고 앞날이 막막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렇게 보면 2,544명을 낮은 사망률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다. 앞날이 막막한 상황을 풀어갈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위로의 말과 어쩔 수 없다는 논리만으로 갑작스런 상황에 준비되지 않은 산 사람이 희망을 가질 수는 없다.
‘중용’에서는 사람에게 “광대하고 보편적인 것을 완전히 하고 정밀하고 특수한 것을 세세하게 파악하며 높이 환히 비치는 것을 끝까지 찾고 현실에 맞는 중도의 길을 최대한 찾아라(치광대이진정미·致廣大而盡精微, 극고명이도중용·極高明而道中庸)!”고 요구한다. ‘중용’은 광대하고 고명한 거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미하고 중용적인 측면도 중시한다. 그래야만 삶에서 전망이 주는 희망으로 현실이 주는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코로나19와 관련해 광대에 치중하고 정미에 소홀히 한 셈이다. 그 결과 백신 접종 이후에도 불안이 안심으로 바뀌지 않고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사망자를 기념하고 사망자의 가족이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찾는 등 정미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불안도 서서히 꼬리를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