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이 최근 한 달간 진행된 약세장에서 삼성전자(005930)를 비롯한 대장주들을 팔아치우는 한편 최근 상장한 ‘새내기주’를 비롯해 ‘정유’ ‘항공’에 베팅했다. 지난달부터 7,000억 원어치를 팔아치운 연기금이 이 와중에서도 순매수에 나선 투자 ‘키워드’를 살펴보면 약세장에서의 투자 전략에 참고할 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월 9일부터 이달 8일까지 연기금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가장 많이 순매도한 주식은 ‘반도체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를 7,110억 원어치, SK하이닉스(000660)를 1,547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연기금은 최근 한 달간 6,878억 원 매도 우위를 보였는데 반도체주가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인터넷 업종의 대장주인 네이버는 1,759억 원어치를 매도해 2위를 기록했다. 2차전지 산업의 대표 주자인 삼성SDI(006400)는 1,254억 원어치를 팔아치워 4위에 올랐다. 셀트리온(068270)(1,237억 원)과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922억 원) 등 바이오주가 뒤를 이었으며 현대차도 895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증권 업계에서는 최근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는 과정에서 대형주들을 팔아치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연기금은 전체 투자자산 중 국내 주식의 비율을 조정하는 중이다. 국내 증시에서 주가가 계속 오르면서 국내 주식 비율이 정해진 목표 비율을 크게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에 가격이 많이 오른 자산은 팔고 가격이 하락한 자산을 매수하는 ‘리밸런싱’을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주식 사정이 좋지 않았던 지난해 많이 사들인 대형주들을 팔아 차익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연기금이 피크아웃(실적이 정점을 찍고 하강하는 것) 우려에 경기민감주 비중을 덜어내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테이퍼링 가능성이 높아져 달러 강세, 금리 인상 등 증시에 불리한 외부 환경이 조성되는 상황에서 당분간 공격적인 비중 확대 전략보다는 수익률 방어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기금의 순매도 목록에는 대표적 경기민감주인 포스코(386억 원)와 현대제철(153억 원), 한국조선해양(435억 원), HMM(011200)(423억 원) 등이 포함됐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기가 꺾이면 제조업 중심의 아시아 국가 증시는 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증시에 데뷔한 새내기주들은 하반기 연기금의 관심을 꾸준히 받고 있다. 순매수 1위와 2위를 ‘배틀그라운드’ 제작사 크래프톤(259960)(3,491억 원)과 현대중공업(329180)(1,768억 원)이 차지했다. 이 같은 포트폴리오 조정은 연기금이 목표 수익률을 정하는 표본인 벤치마크로 삼는 코스피200지수 내 비중을 맞추려는 취지로 보인다.
철강·해운과 마찬가지로 경기민감주로 분류되지만 정유와 항공은 연기금의 장바구니에 담겼다. 대한항공(003490)(1,014억 원)과 아시아나항공(020560)(303억 원), 에쓰오일(912억 원), SK이노베이션(096770)(778억 원) 등이 순매수 상위 종목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항공주는 해상운송 적체가 장기화하면서 항공운송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정유주들은 최근 유가가 7년 만에 최고치로 오르고 수익 지표인 정제 마진이 개선된 점이 주효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력·에너지난이 심화하는 점도 긍정적인 전망에 힘을 더하고 있다.
연기금의 수급에 따라 종목 수익률도 희비가 갈렸다. 연기금이 매물을 쏟아낸 종목은 대부분 낙폭이 컸다. 삼성전자는 -5% 밀렸으며 네이버(-3%)와 SK하이닉스(-9%), 삼성SDI(-8%)도 약세였다.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는 각각 17%, 26% 급락했다. 반면 연기금의 순매수 상위 종목들은 최근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수익을 내거나 낙폭이 크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 연기금이 매수한 상위 30종목 중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9곳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