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렸다

■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트럼프 中 관세정책 비판한 바이든

백악관 입성후 보호무역주의 이어가

일자리쇼크는 교역 아닌 산업환경 탓

잘못된 시장분석이 공공정책 왜곡








지난 8개월간의 대중국 무역정책을 검토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가 옳았고 바이든이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바이든은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참담한 실패’로 몰아치며 끊임없이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는 백악관에 입성한 후 ‘참담한 실패작’인 전임자의 정책을 그대로 채택했다.

선거전 당시 바이든 후보는 옳았다. 트럼프의 관세는 의도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중국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고임금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대중 무역 적자가 다소 감소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전반적인 무역 적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중국은 즉각 ‘관세 맞불’로 응수했다. 지난해 연구 결과는 중국 상품에 부과된 관세 비용의 거의 100%를 미국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지불했음을 보여준다. 올해 나온 또 다른 보고서는 트럼프의 관세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총 24만 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했다.



워싱턴의 무역정책은 양당의 정치적 이념으로 뒤범벅이 됐고 검증되지 않은 추정에 의해 이끌렸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애덤 S 포즌 회장은 미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즈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그 같은 추정 모두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세계를 향해 경제 문호를 개방했고 그로 인해 근로자들이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지난 20년간 우리가 품었던 독단적 믿음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외국과의 경쟁을 피하고자 미국이 폐쇄적인 조치를 취한 반면 나머지 국가들은 경제 개방과 통합을 꾸준히 추진했다”는 게 포즌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이어 “전체적으로 글로벌 경제에 노출을 확대한 대다수 다른 고소득 민주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극단주의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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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보호주의를 촉발시킨 요인은 중국과의 교역 확대가 200만 개에 달하는 미국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를 앗아갔다는 이른바 ‘중국발 무역 충격’ 이론이었다. 앞뒤 맥락을 살피지 않으면 200만 개의 일자리는 대단히 큰 숫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는 지난 2000년에서 2015년까지의 합산치로 이 기간의 연간 평균치는 13만 개 정도였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의 정상적인 변동으로 매년 사라지는 일자리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6,000만 개다. 이 중 3분의 1은 자발적 실업이고 또 다른 3분의 1은 고용주의 폐업 조치 혹은 기업 이전 등 대외 교역과 관련 없는 요인에 의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 3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 개가 외부 충격에 의해 사라진 일자리인 셈이다. “다시 말해 중국과의 경쟁 과정에서 없어진 제조업 일자리 한 개당 대략 150개에 달하는 다른 산업 분야의 일자리가 유사한 외부 충격으로 인해 사라졌다”고 포즌은 지적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근로자들 가운데 16%만이 제조업 분야에서 일한다.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 요인의 상당 부분 혹은 거의 전부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것이지 교역에 의해서가 아니다. 상품을 생산하는 국내 제조업 분야의 근로 인력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 산업의 생산량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건 미국에 국한된 추세가 아니다. 포즌이 이끄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지난 30년 동안 오하이오의 제조업 고용 동향을 추적한 차트를 만든 후 이를 오하이오에 버금가는 독일의 제조 산업 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자료와 비교했다. 미국과 달리 독일은 무역 흑자국이다. 독일 정부는 자국 경제의 심장에 해당하는 제조업에 상당한 지원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일자리 손실은 미국보다 독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중국 경제 역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업으로 가지를 뻗으면서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대부분을 백인 남성 근로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집착하는 정책은 여성과 소수계가 비중이 큰 다른 분야의 일자리 가치를 떨어뜨린다. 여성과 소수계 그룹은 백인 남성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할 뿐 아니라 관세로 가격이 오른 외국 상품으로 인해 가장 심한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에 속한 대다수 근로자에게 강화된 보호주의 무역정책은 경제적 고통이 추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포즌은 미국이 지닌 경제적 불평등과 불만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인색한 국내 지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고용과 연계되지 않은 ‘휴대형(portable) 헬스 케어’ 같은 튼실한 사회 안전망이 모든 근로자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바로 이곳이 잘못된 시장경제가 공공정책을 왜곡하는 지점이다. 사회 안전망의 질과 폭을 개선하고 확대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제안은 실직 근로자들을 돕고 불평등을 축소하며 취업 준비 태세를 강화한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보호무역주의는 그 해악을 입증하는 차고 넘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어슬렁대는 ‘좀비 아이디어’가 돼버렸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 같은 사고가 미국의 기본적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은 대대적인 변화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숱한 입증 자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타인과 더불어 공동의 번영을 누려야 한다는 긍정적이고 당당한 전통적 가치관에서 이탈해 냉정하고 혼탁한 세계관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모든 참가자의 득과 실의 합이 제로가 돼버리는 칙칙한 제로섬 세계에서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책임을 돌릴 악당을 찾는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는 치졸한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방 모두를 속이려 든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트럼프의 방식을 좇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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