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고인돌2.0]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가치 정립이 필요해요”

강남도서관이 마련한

김범수 교수의 ‘만들어진 문화 취향: 기만과 폭력을 넘어서’

서울 경기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화산업의 양면을 이해하는 시간 가져

김범수 상지대 철학과 초빙교수가 지난 12일 서울 경기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강의에서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로 대중문화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김범수 상지대 철학과 초빙교수가 지난 12일 서울 경기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강의에서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로 대중문화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




지난 12일 서울 경기여자고등학교 시청각실에 3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대중문화를 주제로 열린 특별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강남도서관이 지역 청소년의 인문학적 사고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김범수 상지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가 강의를 맡았다.



강단에 오른 김 교수는 “여러분이 쉽게 접하고 즐기는 대중문화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며 대중문화를 이용해 권력을 키운 ‘아돌프 히틀러’의 예를 들었다. 그는 “히틀러가 대중문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역할이 컸다”며 문화로 대중을 선동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시해 준 히틀러의 오른팔 ‘파울 괴벨스’와 영화를 제작해 이를 실현시켜 준 ‘레니 리펜슈탈’ 감독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여성 감독 레니 리펜슈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1902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리펜슈탈은 무용수로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다. 다리를 다쳐 더 이상 무용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영화감독이 돼 타고난 예술적 감각을 표출했다. 리펜슈탈이 만든 영화들은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히틀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리펜슈탈을 만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영화로 만들어 줄 것을 제안했고 리펜슈탈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가 ‘의지의 승리(1935)’다.

김 교수는 ‘의지의 승리’의 일부분을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전당대회가 있는 날 히틀러를 태운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며 하늘을 날고 있다. 이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독일 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히틀러를 태운 비행기가 착륙한 뉘른베르크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다. 히틀러는 온화한 미소로 비행기에서 내려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전당대회장으로 향한다.



김 교수는 “이 영화에서 리펜슈탈은 하늘에서 독일을 굽어살피는 듯한 표현으로 히틀러를 신격화 했다”며 “이 영화는 당시의 기술로는 쉽지 않은 예술적인 영상미로 대중들을 매료시키며 히틀러의 권력을 안정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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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정치적·상업적으로 이용당하는 문화산업을 신랄하게 비판한 학자들도 많다”며 대표적으로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독일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를 꼽았다. 그들은 저서 ‘계몽의 변증법’에서 “기업은 상품화의 논리에 따라 문화를 보급하고 대중은 이를 수동적으로 소비할 뿐”이라며 “대중이 문화산업에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산업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봐야 할까”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그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는 “문화가 산업화되면서 사회적 지위를 떠나 누구나 문화를 누릴 수 있게 됐고 문화 상품의 다양성도 확대됐다”며 문화산업의 긍정적인 측면을 설명했다. 이어 “대중문화가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지만 비판하고 밀어내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대중문화에 대한 가치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문화의 부정적인 부분을 인지하고 그 너머에 있는 긍정적인 가치를 즐기라”고 당부했다.

강남도서관이 마련한 김 교수의 강좌 ‘만들어진 문화 취향: 기만과 폭력을 넘어서’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강의를 들은 경기여고 2학년 이주영 양은 “대중문화의 역사를 통해 문화산업의 부정적 측면을 이해하게 됐다”며 “대중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2학년 신준영 양은 “문화산업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유익한 강의였다”고 밝혔다.

이미경 경기여고 역사 교사는 “대중문화의 영향력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영화로 쉽게 설명해 학생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인 강의였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인문학 사고를 높이기 위한 고인돌 2.0 강좌는 3월부터 11월까지 모두 80여개 중·고등학교에서 실시된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


이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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