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영기업 베이징진공관이 적자 누적으로 파산 위기에 처하자 이 회사 공장장으로 일하던 왕둥성은 1993년 직원들과 함께 650만 위안(약 10억 원)을 모아 베이징둥팡전자(Beijing Oriental Electronics)를 설립했다. 회사 규모를 키워나가던 2001년에는 사명을 ‘BOE테크놀로지그룹’으로 바꿨다. 이때까지도 BOE는 일본 기업들의 하청 업체에 불과했다.
BOE가 2002년 말 유동성 위기에 처한 한국 현대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자회사 하이디스를 인수한 것은 도약의 발판이 됐다. 당시 세계 수준이던 하이디스의 LCD 기술이 중국에 유출될 수 있다는 국내 업계의 걱정이 컸지만 손실 줄이기에 급급했던 채권단은 매각을 강행했다. 우려대로 BOE는 인수 즉시 전산을 통합해 핵심 기술을 빼갔고 연구원들을 본사로 이직시켰다. 수년 동안 투자를 거의 하지 않다가 중국 공장이 완공된 2006년에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하고 철수했다.
‘하이디스 기술’을 장착한 BOE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2019년에는 세계 LCD 시장에서 점유율 17.5%로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그 배경에는 ‘기술 굴기’를 외치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2010년부터 10년 동안 BOE가 받은 정부 보조금만 2조 원에 달한다. 정부를 등에 업고 기술력을 끌어올린 BOE가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마저 우리 기업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BOE가 최근 애플의 아이폰13용 OLED 패널을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리퍼(교체)용 패널에 한정해 공급해오다 신제품용을 처음 납품한 것이다. 아이폰 신제품 OLED 패널 공급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6 대 4로 양분해왔는데 앞으로 삼파전이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OLED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과점 체제가 무너지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BOE의 위협은 한국 경제가 살아갈 길은 기술 초격차 확보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또 유동성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금융자본의 이해와 논리로 인해 국가 전략산업의 기술이 외국에 넘어가는 문제가 심각한 우리 현실도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