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에서 기습적으로 총파업 집회를 개최했다. 집회 예상 지역 통행이 제한되고 순식간에 조합원 수만 명이 모이며 일대에 혼란이 빚어졌다. 경찰은 해당 집회의 불법 행위를 수사할 수사본부를 편성했다.
민주노총은 20일 오후 2시께 서대문역 사거리에서 집회를 강행했다. 이날 을지로입구역, 서울시청과 태평로 일대, 종로3가 등에 흩어져 있던 조합원들은 1시 40분께 집회 장소가 발표되자 삼삼오오 이동했다. 서울시청과 광화문 주변에 밀집해 있던 경찰도 방패를 들고 뛰면서 급히 이동했다. 경찰은 이날 총 171개 부대 약 1만 2,000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앞서 집회 불허 방침을 밝힌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도심 주요 지역에 십(十)자 형태의 차벽을 형성하고 검문소를 설치했지만 집회를 막는 데 실패했다. 일부 횡단보도 이용이 금지되는 등 통행 통제가 이어지자 시민들이 경찰에게 우회로를 물어보거나 항의하는 등 혼란도 빚어졌다.
시청역 인근의 중부등기소를 찾은 대학생 이 모(23)씨는 "지하철이 시청역을 지나쳐 충무로역에서 여기까지 30분 걸어왔다"며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버스도 운영이 중지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빽빽이 형성된 차벽 사이에 난 틈으로 빠져 나오다 "어떻게 가라는 것이냐"고 화를 내며 경찰버스를 손으로 치기도 했다.
서대문역 사거리에 모인 조합원들은 금세 도로 양방향의 6~7개 차로를 점거한 후 오후 2시 30분께 본격적으로 총파업대회를 시작했다. 운집 인원도 1시간 안에 불어나 2만 7,000명(주최 측 추산)까지 늘었다.
코로나19 유행 속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을 의식한 듯 마스크를 벗거나 크게 소리를 내는 조합원은 없었다. 일부 지점에 방역 지침 안내문을 세워놓고 발열 확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밀착해서 이동을 하는 등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인근 골목에서 담배를 피거나 마스크를 벗고 쉬는 조합원도 여럿 발견됐다.
행사가 시작되면서 교통이 혼잡해져 시민들의 불만도 잇따랐다. 집회 장소를 지나던 정 모(67)씨는 "아현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버스가 운행을 안 해서 걸어가고 있다"며 "감염병이 심각한데 이렇게 모이는 게 좋게는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집회 장소 인근 아파트 주민 최 모(33)씨도 "아이가 하교 중인데 차로가 점거돼서 셔틀버스가 이동을 못 하고 있다"며 "어디서부터 교통이 끊긴지 몰라 아이가 집에 잘 올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대문역 인근에서 일하는 한 직장인 역시 "카페나 식당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경찰은 방송을 통해 '장시간 도로 점거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화되고 있다' '속히 집회를 중단하고 해산해달라' '집시법 위반에 따라 채증을 시작한다'며 경고했지만 강제 해산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집회 시작 전 일부 구간에서는 경찰이 이동을 제지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반발해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날 집회는 민주노총과 경찰의 별다른 물리적 갈등 없이 오후 4시 30분께 종료됐다. 부상자나 연행자는 없었다.
경찰은 이날 집회 종료 뒤 불법 행위를 전담 수사할 수사본부를 편성했다. 서울경찰청은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67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편성해 수사에 착수했다"며 "최근 수도권 지역 감염병 확산 위험을 우려한 정부의 파업 철회 촉구와 경찰, 서울시의 집회 금지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불법집회를 강행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