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핵심증거에 자신감·과정 무시 무리수…성패 기로 선 공수처 고발사주 수사

2시간 30분가량 구속 전 피의자 심문…양측 PPT 공방

피의자 조사 등 건너 뛴 구속영장 청구에 ‘이례적’ 시각

일각선 공수처, 孫 개입 여부 증명할 증거 확보 분석도

孫 측, 피의자 방어권 무시한 처사…혐의도 부인 입장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손준성 전 수사정보담당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고발 사주’ 의혹을 겨냥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가 성패의 기로에 놓였다. 손 전 담당관은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그의 신병을 확보할 경우 공수처는 윗선 지시 등 수사에 물꼬가 트인다. 반면 기각되면 공수처는 기존 수사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손 전 담당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열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2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양측은 각각 1시간 가량 프레젠테이션(PPT) 형식으로 공방을 펼쳤다. 이는 공수처가 지난 2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손 전 담당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공수처와 손 전 담당관은 지난 4일부터 출석 일정을 논의했다. 하지만 19일까지 확정되지 않아 공수처는 20일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피의자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아니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유에서다. 공수처는 손 전 담당관 측이 출석을 내달 2일로 미뤄달라고 요청하자, 사흘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체포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았고, 또 피의자 조사마저 건너 뛴 구속영장 청구라 ‘이례적’이라거나 ‘수사 ABC도 모르는 처사’라는 비판에 나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체포영장은 구속영장과 마찬가지로 범죄 혐의를 어느 정도 소명했는지를 기재한다”며 “체포영장이 기각된 상태에서 발부 기준이 한층 엄격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자체가 법리적으로는 다소 이해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수사를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차분히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수처 내부에서 충돌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수사에 가속을 붙여야 한다는 쪽으로 힘이 실리면서 다소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듯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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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사주' 의혹의 제보자 조성은 씨가 국민의힘 김웅 의원과 나눈 통화 내용을 복원해 공개한 가운데 김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리는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기상청 종합국감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고발사주' 의혹의 제보자 조성은 씨가 국민의힘 김웅 의원과 나눈 통화 내용을 복원해 공개한 가운데 김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리는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기상청 종합국감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체포영장 재청구는 물론 피의자 조사까지 건너뛰는 이례적 행보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수처가 손 전 담당관이 개입한 구체적 단서를 확보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전면에 소환 조사에 대한 비협조적 태도를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 혐의 입증이 가능한 증거를 확보해 손 전 담당관에 대한 신병확보에 나섰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앞서 김 의원실은 물론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손 전 담당관 등의 검찰 내부 메신저 대화 내용도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최근에는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수사관들도 불러 조사했다. 공수처는 손준성→김웅→조성은씨 순으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이 전달됐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검사의 지휘를 받던 파견 검사 A씨가 해당 고발장을 작성하고, 이를 김 의원에게 넘겼다는 게 공수처의 판단이다.

반면 손 전 담당관 측은 공수처가 대선 경선 일정을 언급하며 출석을 종용하는 등 방어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근거 가운데 하나로 공수처 검사로부터 받은 문자를 꼽았다. 문자에는 ‘국민적 의혹 확산과 대선 후보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해 조속한 출석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출석 불응 때는 적법 절차에 따라 강제 수사에 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자는 물론 피의자·변호인 통보도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피의자 방어권 등 헌법상 기본권 행사마저 무시한 처사라는 게 손 전 담당관 측 주장이다. 또 손 전 담당관은 주된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결국 혐의 입증과 피의자 방어권 보장 여부 등에 대한 법원 판단이 손 전 담당관에 대한 구속 여부를 가를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특히 발부·기각에 따라 공수처는 수사 성패는 물론 수사력 논란까지 좌우될 수 있다. 핵심 인물인 손 전 담당관 신병을 확보하면 공수처는 김 의원 소환 조사 등 수사에 탄력이 붙는다. 출범 이후 첫 구속영장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그동안 휩싸였던 ‘수사력 부재’ 논란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반대로 기각되면 수사 스텝이 꼬인다. 게다가 체포영장 재청구나 피의자 소환 조사 등 기본적인 과정이 생략된 구속 수사 시도가 실패한 만큼 공수처 수사력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의구심이 한층 커질 수 있다. 손 전 담당관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이날 밤늦게 결정될 전망이다. 손 전 담당관은 법원이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게 된다.


안현덕 기자·이진석 기자·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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