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신격호 도전정신은 오늘날 귀감"...소박함 깃든 전시관 문열어 [뒷북비즈]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

20대에 단돈 83엔 들고 일본가서 자수성가

국내서 제과·유통·유화 등 '롯데왕국' 신화

신동빈 "창업주 열정 깊이 새겨 미래준비"

전시관에는 직접 사용한 녹음기·카메라 등 놓여

젊은 시절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젊은 시절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1942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간 청년 신격호는 첫 공장이 폭격으로 전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허물어진 군수 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도전 정신을 발휘해 껌 사업에 뛰어들면서 큰돈을 벌게 된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그는 1948년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을 만들어 사업을 키우고 한국에 돌아와 1967년 롯데제과를 세운다. 식품 사업은 물론 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로 확장하면서 롯데그룹을 오늘날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도약시키는 초석을 닦았다.

3일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기를 계기로 그의 거화취실(去華取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취한다) 기업가 정신이 다시 회자하고 있다. 신 명예회장은 겉치레를 삼가고 항상 실질적인 측면을 추구해왔다. 특히 그의 도전 정신, 탁월한 마케팅 감각, 현장주의는 코로나19로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일 서울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신격호 기념관 개관식에서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가는 길에 신 명예회장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도전과 열정의 DNA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명예회장님의 정신을 깊이 새기면서 모두의 의지를 모아 미래의 롯데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전시관에 집무실 모습이 재현돼있다.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전시관에 집무실 모습이 재현돼있다.


1일 찾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기념관에는 소박함을 추구한 그의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롯데그룹은 시민들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도록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 기념관을 조성했다.

우선 집무실은 신 명예회장이 업무를 봤던 책상이 그대로 재현돼 눈길을 끌었다. 책상 위에는 한자·영어·러시아어로 된 세 가지 명함이 놓여 있다. 신 명예회장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해외 국가에 다양한 글로벌 사업을 추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책상 위에 놓인 이름 없는 명패도 눈에 띈다. 또한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추구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거화취실(去華就實)과 한국 농촌의 풍경이 담긴 그림이 액자로 걸려 있다. 그의 소박한 성품과 모국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념관에서는 신 명예회장이 롯데를 창업하는 과정도 디지털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가 청년 시절 일본에서 고학하며 사업을 일군 과정에서 있었던 여섯 가지 주요 일화가 일러스트 영상으로 구성됐다. 라이브 드로잉의 대가로 불리는 김정기 작가가 롯데의 발전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대형 드로잉 영상도 볼 수 있다.

관련기사



신 명예회장이 직접 신고 현장을 누볐던 낡은 구두와 돋보기·안경집·펜·수첩은 물론 즐겨보던 책과 영화·테이프 등도 눈길을 끈다. 평소에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가수 조용필의 곡을 즐겼다고 한다. 이 밖에 롯데제과 최초의 껌 ‘쿨민트’부터 롯데백화점 초기 구상도, 롯데월드타워 기록지까지 사업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신 명예회장 흉상은 좌대를 포함해 185㎝ 높이로 청동으로 제작됐으며 롯데월드타워 1층에 전시된다. 흉상 뒤에는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강병인 서예가의 글씨로 담았다.

신격호(가운데)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79년 서울 중구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 개점식에서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신격호(가운데)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79년 서울 중구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 개점식에서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신 명예회장이 한국의 유통업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도전 정신과 마케팅 감각이 적극 발휘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소비 욕구가 다양해졌지만 당시 국내 백화점의 대다수는 영세했다. 신 명예회장은 국가 경제의 발전과 유통업 근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백화점 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는 1979년 완공돼 당시 기존 백화점의 두세 배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꾸며진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당시부터 고객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국내 1위 백화점의 지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현재 유통 업계가 겪고 있는 위기를 타개하려면 신 명예회장의 도전 정신과 마케팅 감각을 본받아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서비스업이 크게 위축됐고 인구 절벽을 맞닥뜨린 한국에서는 유통 시장 규모가 점차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신 명예회장은 창의적 발상과 추진력으로 여러 신사업을 펼치면서 한국 유통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면서 “신 명예회장이 계실 때 롯데가 확보한 부동산 등 자산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유통 사업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명예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확인해야 한다고 자주 강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제대로 된 자본도 갖고 있지 않던 그가 화장품 사업가로서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도 각종 화장품 가게를 돌아다니며 제품과 포장 용기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고객들의 선호도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백화점이나 롯데마트·롯데호텔 등 현장에 불쑥 나타나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의 묘역에 있는 금석문에 새겨진 “거기 가봤나?”라는 글귀는 현장 경영의 중시했던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장 경영을 강조했던 신 명예회장의 정신은 디지털 전환 등으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오늘날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이 소비자들과 접촉할 경로는 더욱 많아지고 소비자들의 니즈는 다양해지는 만큼 현장에서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명예회장은 내수 시장에서만 통하는 제품이 아니라 전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제품을 추구하고 개발해야 경영 기반을 안정화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이에 롯데는 러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 등 글로벌 사업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진출한 어느 국가·도시든 롯데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는 믿음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김기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