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치마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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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어느 신전이 있어 그 외벽이 잔바람에도 나풀거릴까? 어느 신전이 두 개의 기둥만으로 우뚝할까? 어느 기둥이 관절이 있어 사뿐사뿐 나비처럼 꽃신 떼어놓을까? 어느 위대한 영웅이 저 신전 밖에서 나왔을까? 전 지구를 뒤덮은 78억 인류가 굼실굼실 기어 나온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궁전이여. 위대하면서도 치명적이고, 눈부시면서도 캄캄한 호모 사피엔스의 사원이여.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본능과 모성의 종교여.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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