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집값 폭등에 ‘금수저 세금’은 옛말…중산층 상속세 쓰나미 몰려온다 [관점]

◆‘뜨거운 감자’ 상속세 개편

1999년 개편 후 소득 3배·물가 60% 올라도 세율 요지부동

아파트 가격 4배 오른 서울…집 한 채 ‘어쩌다 상속세’ 속출

2년 뒤 베이비부머 전부 60대 진입, 자산비중 고령층 40%

유명무실한 가업상속…요건 완화하고 기업 차별 철폐해야






상속세 개편 문제가 세제 개편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상속세 개편을 위한 연구 용역을 마치는 대로 조만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번 개편안은 지난해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세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외국 투기 자본으로부터 성실히 일하는 기업가를 보호하는 것 등을 포함해 상속세 전반에 대한 합리적 개선을 검토하라”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11월 정기국회에서 상속세 개편을 다루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정치 지형상 개편 작업이 탄력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모든 세제 개편이 그렇듯이 상속세 개편도 대선 정국과 맞물려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 개편 논의는 삼성 일가의 천문학적 세금(약 13조 원)이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전문가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현행 상속 세제는 지난 1999년 최고 세율을 45%에서 50%로 인상한 후 22년 동안 골격에 거의 변화가 없어 경제·사회적 여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경제 규모와 1인당 국민소득은 3배 가까이 불어났고 물가도 60%가량 올랐는데도 세율 구조(10~50%)는 요지부동이다. 이 기간 중 전국 아파트 가격은 3배 넘게 올랐다. 문재인 정부 들어 폭등한 집값은 상속세를 더 이상 극소수의 자산가와 기업 오너 등에 국한된 세금으로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현 정부 들어서만도 서울 아파트 가격은 2배가량 급등했다. 배우자가 없고 자녀만 있다면 시세 5억 원, 배우자와 자녀가 모두 있다면 시세 10억 원 이상 주택 한 채만 상속해도 과세 영향권에 든다.

당장 불똥이 떨어진 곳은 집값 상승으로 ‘어쩌다 상속세’를 내야 하는 계층이다. 서울 주택 가격 수준을 고려하면 웬만한 아파트 한 채만 물려줘도 수억 원의 상속세를 내야 할 처지다. 김영호 세무사는 “상속세는 부유층만 내는 세금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어 부동산 가격이 올랐는데도 상속세 납부 대상자인지 모르고 있다가 가산세까지 추징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상속세 납부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국세청 통계연보를 보면 지난해 상속세 납부자는 1만 1,500명으로 연간 30만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의 3% 수준이다. 다만 상속세 납부 인원이 집값 폭등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상속세 납부자 증가율은 무려 20.6%에 이른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KB기준)이 10월 현재 12억1,639만 원에 이르러 웬만한 아파트 한 채를 물려줘도 상속세를 내야 한다. ‘금수저 세금’으로 불렸던 상속세가 집값 폭등으로 중산층 과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연합뉴스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KB기준)이 10월 현재 12억1,639만 원에 이르러 웬만한 아파트 한 채를 물려줘도 상속세를 내야 한다. ‘금수저 세금’으로 불렸던 상속세가 집값 폭등으로 중산층 과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7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의 자녀들인 MZ세대(20~30대)는 머지않아 상속세 쓰나미를 맞을 공산이 크다. 베이비부머는 산업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재산을 늘린 세대로 꼽힌다. 하나금융연구소는 베이비부머 보고서(2019년)에서 “베이비부머가 모두 60세 이상이 되는 오는 2023년 이후에는 고령층 자산 보유 비중이 40%를 돌파할 것”이라며 “이들이 후기 고령층에 접어드는 2030년 이후에는 초고령 국가인 일본과 같은 대규모 자산 이전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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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주택 소유 통계는 시사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공시가격 6억 원(시세 8억 5,000만 원)을 넘는 주택자산(모든 주택 합산)을 보유한 가구는 109만 가구에 이른다. 이는 주택을 소유한 1,145만 가구의 9.6% 수준이다.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처음 집계한 2015년 주택자산 6억 원을 넘는 54만여 가구(5.1%)에 비하면 거의 두 배가 늘어났다. 이는 상속세 납부 계층이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임을 보여준다. 전국적으로 공시가격 7억 원(시세 10억 원) 이상 공동주택도 86만여 가구에 이른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세가 ‘구름 위의 세금’이 아니라 중산층 세제로 접어들고 있다”며 “세원이 넓어진 만큼 세율과 과세 방식, 공제 제도 등 조세 전반을 합리적으로 개편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 거주한 1주택자가 다른 상속 재산 없이 집 한 채를 물려준다면 세 부담을 완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주택 상속에 대한 공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명 ‘효자·효녀 공제’로 불리는 동거 주택 상속 공제가 있다. 부모 봉양의 반대 급부로 6억 원 한도에서 100% 공제된다. 하지만 부모가 결혼한 자식과 함께 살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고 따로 산다고 해서 효자·효녀가 아니라는 논리도 설득력이 없다. 최대 2억 원을 공제하는 금융자산과는 상속 재산별 수평적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상속세를 둘러싼 여러 논란의 뿌리에는 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인식이 자리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대주주 할증(20%) 과세를 반영하면 단연 1위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OECD 38개국 가운데 상속세를 채택한 20개국의 평균 최고 세율은 15% 수준이다. 나머지 18개국은 처음부터 없었거나 폐지 또는 전액 비과세한다. 물론 명목 세율을 단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는 반론이 없지 않다. 소득세율 및 조세부담률과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속세의 취지가 소득세를 보완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데 있지만 상속세율이 소득세율(최고 45%)보다 높은 것은 본말전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2019년 2월 상속세 과세 방식을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연합뉴스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2019년 2월 상속세 과세 방식을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연합뉴스


해외 각국이 2000년대 들어 상속세 부담을 낮추거나(일본·이탈리아·노르웨이)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일종의 양도소득세)로 전환하는(스웨덴) 동안 우리나라는 되레 사전 신고 세액공제 10%를 3%로 낮췄다. 이세진 국회입법조사처 재정경제팀장은 “상속세는 세수는 적어도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세제”라며 “상당수 의원들도 세율이 과도하다고 인식하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속세제는 부의 대물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과 연결되기 때문에 세 부담을 완화할 현실적 대안은 현행 유산세인 과세 방식을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인별로 실제 취득하는 유산에 과세하는 방식이어서 상속재산 총액에 과세하는 유산세에 비해 세 부담이 덜하다. 김우철 교수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면 부유층에게는 영향이 없지만 중산층의 세 부담은 확실히 줄일 수 있다”면서도 “소수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공평 과세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며 세율 인하 병행론을 제기했다.

가업 승계 활성화는 해묵은 과제다. 가업 상속은 일반적인 상속과 결이 조금 다르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가업 상속은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라기보다 기업 경영의 연속성 확보라는 성격이 짙다”며 “일본과 독일의 경우 상속세율이 높지만 가업 승계에 대해 관대한 것은 가업 승계를 통한 고용과 투자 등 국민 경제의 순기능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2008년부터 가업 승계 공제 제도를 마련했지만 대기업은 배제되고 중소·중견기업에만 적용된다. 그나마 사후 관리 요건이 해외에 비해 너무 까다로워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밀폐용기로 유명한 ‘락앤락’과 세계적 손톱깎이 제조사인 ‘쓰리세븐’ 등의 경영권이 상속세 부담 등을 이유로 사모펀드로 넘어갔다. 오문성 학회장은 “기업 오너의 주식과 핵심 자산은 현금화가 어려운데도 세금부터 부과한다”며 “가업 상속을 위해서는 자본이득세 전환이 최선이지만 당장 어렵다면 세율 인하와 가업 공제 사후 요건 완화, 기업 규모별 차별 철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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