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勞 요구에 법안 발의만 5개...재계는 "노사합의로 가능한데" 반발

[文정부 임기말 친노동 대못박기]유급병가 법제화 논란

백신휴가 도입 이후 건강권 보장 목소리 커져

이미 절반 이상 기업은 단체협약에 규정 마련

재원·유급휴일 조정 등 사회적 합의 선행 필요

지난달 13일 서울의 한 여행사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지난달 13일 서울의 한 여행사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에서 유급병가의 법제화 논의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진 후 서서히 가열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노동자가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꾸준했지만 정작 노동시장의 현실과는 괴리가 컸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휴가가 도입되고 이번 기회에 선진국처럼 유급병가까지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여기에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이 입법으로 가세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다음 달 마무리하는 유급병가 용역에서 구체적인 방향이 어떻게 나올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당장 경영계는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하기는 한데, 돈은 누가 내나. 기업에 업무 외 질병 책임까지 지우나”라며 반발하고 있다. 유급병가 도입을 논하기 전에 정작 누가 재원을 부담할지, 다른 유급휴일과는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의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벌써 법안만 5개…정부도 연구 용역 마무리=고용부가 올해 유급병가 도입이 가능한지 연구 용역을 맡긴 배경은 정치권의 입법 의지와 맥이 닿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국회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병가제도와 관련된 입법을 발의한 의원은 5명인데 모두 여당이다. 한국노총 출신인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6월 연간 30일 범위의 병가제도를 도입하는 안을 발의했다. 서영석 의원안은 연간 30일 범위의 병가제도를 도입하고 유급병가는 사용자가 비용을 부담하는데 평균임금의 60%를 최저한도로 정했다. 김경협 의원안은 1년 범위 내에서 상병 휴직을 보장하도록 했다. 근로자가 업무 외 부상 또는 질병에 걸렸을 때 쉴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노동계는 내년 대선 공약 사항으로 유급병가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자 상당수는 몸이 아프면 대부분 연차휴가를 사용해 치료를 받는데 이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이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며 “공무원 규정에 준해 노동자가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유급병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원 부담에 난색 경영계는 “시기상조”=경영계도 노동자가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유급병가를 당장 도입하자는 주장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아직 재원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제도부터 도입하자는 데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그대로 추진되면 사용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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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법률 심사에서 지적한 부분이다. 환노위는 한정애 의원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서 우선 병가 도입을 할 때 유급인지, 무급인지부터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주아 환노위 전문위원은 “병가를 유급으로 했을 때 사용자의 부담이 크고, 무급으로 할 경우에도 고용 유지와 일부 사회보험료 부담이 사용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 국가는 부상과 질병을 입은 근로자의 소득 보전을 공공 보험이 담당하고 나머지를 사업주가 부담하는 식으로 유급병가를 활용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으로 유급병가를 규정해 업무와 관계없는 질병에 걸리고 부상을 당한 노동자까지 지원하는 게 맞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이 어려워졌고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생산성을 고민해야 하는 산업 현장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경제 단체의 한 관계자는 “유급병가는 여력이 있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취업규칙 반영 등을 통해 정할 문제”라며 “아무리 근로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업무 외 발생한 질병과 사고까지 모든 기업이 보상을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상병수당 내년부터 시행, 주휴일 체계도 변수=학계에서는 유급병가 도입 여부는 유사한 제도인 상병수당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본다.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지원 주체가 각각 기업과 정부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관련 연구 용역을 마치고 내년부터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상병수당을 시범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상병수당이 안착할 경우 유급병가를 서둘러 도입할 유인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국내 노동환경도 고려 사항이다. 노동연구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미 조사 기업의 70~80%는 단체협약을 통해 병가를 운용 중이고 절반 이상의 기업에서 유급병가가 가능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해외와 달리 휴일을 유급으로 정하고 있다. 주휴일을 유급으로 정한 국가는 우리나라와 멕시코·브라질 정도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공휴일 규모는 15일 이상으로 독일(9~13일), 호주(7일)에 비해 많다. 고용부 관계자는 “유급병가 도입에 대한 국회와 민간의 논의와 요구가 이어지고 있어 연구 용역을 맡겼다”며 “기업의 비용 부담 등을 충분하게 고려할 사안으로, 아직 도입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세종=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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