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 일의 전쟁이 시작됐다. 여야 양당 후보가 확정되면서 피말리는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까. 최종 승자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역대 어느 대선과 비교해도 사상 초유의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선 여야 양당 대선 후보의 면면이 그렇다. 양당 후보 모두 국회의원 출신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변호사 경험을 가진 도지사,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검찰총장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여의도 1번지로 상징되는 중앙 정치 경력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후보와 윤 후보는 다선의 정치인과 당대표, 도지사 경험을 가진 경쟁 후보들을 꺾고 양당의 후보가 됐다. 두 후보는 지지자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서로 다른 진영과 중도층의 호감도는 크게 떨어진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9~21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비호감도를 물은 결과 ‘이재명 60%, 윤석열 62%’에 달했다.
이 후보와 윤 후보의 또 다른 공통점은 검찰 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 후보는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과 변호사비 대납 의혹, 윤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과 옵티머스 부실 수사 의혹, 한명숙 모해위증 교사 수사 방해 의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아직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든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권 가도에서 타격은 불가피하다.
이 후보와 윤 후보가 중앙 정치 경력 부재, 유권자들의 비호감,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양당 후보로 선출된 것은 여러 가지 함의를 담고 있다. 기성 정치,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이에 대한 반작용이다.
그렇다면 두 후보로부터 국민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기득권 대개혁’, 윤 후보는 ‘정의와 상식’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책 선거를 약속했다. 하지만 두 후보는 대선이 달아오르면 정작 정책 대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날선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각당 지지층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중도 부동층을 붙잡기 위한 표심 경쟁은 벌써부터 달아오르고 있다. 이 후보는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본소득·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에 이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카드까지 꺼낸 이 후보가 앞으로 어떤 공약 행보를 보일지 가늠되는 대목이다.
윤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이 후보의 공약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지만 중도층, 특히 2030 청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비슷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윤 후보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정부 출범 100일 동안 50조 원을 투입해 자영업자 손실보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상 초유의 대선이 사상 최악의 포퓰리즘 대선으로 옮겨갈 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두 후보의 행보에 대해 최근 대권 도전을 선언한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두)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라며 “재정에 대한 기본적인 논리도 모른다. 재정은 있는 돈을 퍼 쓰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포퓰리즘은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포퓰리즘의 위력은 국가 부도 사태가 났던 남미나 재정 위기를 겪은 유럽뿐만 아니라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는 조 바이든에게 패했지만 트럼피즘이라는 망령은 아직도 미국을 활보하고 있다. 포퓰리즘은 바이러스처럼 자기 복제하며 변종을 만들고 언제든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속성을 지녔다. 특히 선거 때마다 지역 정서,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는 한국 정치 지형에서는 위험성이 더욱 크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누구를 위한 포퓰리즘 행보를 하고 있나. 포퓰리즘에 국가와 청년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퓰리즘이라는 망령만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