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이 구름 속을 지나 폭포수를 맞는다. 하늘은 온통 보라색이고, 땅에는 오리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다. 도원경이 이런 모습일까. 그림 속 풍경이 아니다. 형형색색의 실로 그려진 자수 작품 ‘기억’이 만든 세상이다. 한 손에 연잎을 들고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품 속 여인. 바로 대한민국 자수 명장 이승희(65·사진) 전통자수연구소 대표다.
이 명장은 38세에 고(故)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부인 이학 여사가 설립한 이학예술문화진흥원에서 문화예술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독일·일본 등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고 지난 2007년 자수 공예 분야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며 대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2016년에는 노동부 장관상 표창장도 받았다.
이 명장이 처음 손에 실과 바늘을 잡은 때는 15세. 동네 남자애들과 야구나 탁구,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낸 말괄량이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를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본 모양이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자수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어요. 마침 옆집에 자수를 하는 언니도 있었고요. 그게 자수의 길로 들어선 첫걸음이었습니다.”
자수는 보통 민화를 바탕으로 한다. ‘전통적’으로 그랬다. 이 명장은 다르다. 그의 작품에는 민화를 그대로 옮긴 것도 있지만 ‘추상’으로 표현한 것들도 상당수다. 8일 서울 낙원동 종로오피스텔 내 전통자수연구소에서 만난 이 명장은 그 이유를 “‘자수는 옛날 것’이라는 틀을 깨고 싶어서”라고 설명한다.
그는 “예술은 시대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똑같은 것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해석하고 내 색깔을 녹여 넣어 개별성을 부여해야 다양해질 수 있다”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베끼기만 하면 단순노동과 무엇이 다른가. 어떤 철학을 담을 것인지 무슨 스토리를 넣는지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주위에서는 말이 많았다.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이 명장은 현대미술 전시회를 찾고 관련 책을 본다. “우물을 파고 그 속에서 내 메아리만 들어서는 안 된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사고의 전환은 서양화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이 명장은 늦깎이 대학생이다. 32세에 부산여대(현재의 신라대) 미술학과에 입학했다. 전공은 동양화가 아닌 서양화. “어려서부터 소재를 다루다 보니 동양화에서는 볼 수 없는 현대적인 색감과 선을 서양화에서 보게 됐고 그 뒤로 어떻게 그것을 재해석해 자수에 접목할 수 있을까 고민”했기 때문이다.
오직 실과 바늘만을 이용하는 자수는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50년 외길’을 걸어온 이 명장도 지금까지 200여 점밖에 만들지 못했다. 남들보다 손이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데도 그 정도다. 그는 “가는 실로 작업할 때면 곤충의 눈을 만들고 사람 표정을 표현하는 데만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며 “더구나 추상을 할 때면 구상에만 몇 개월이 걸릴 수 있다. 원하는 느낌이 나올 때까지 계속 쳐다봐야 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명장은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다. 몇 개월이나 진행한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해체해 버린 적도 있다. 그는 “조선 시대 대표 풍속 화가인 혜원 신윤복의 작품을 자수로 만들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작업했는데 어떻게 해도 만족감이 들지 않더라”며 “작품을 만들어야지 ‘잡품’을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건 구걸”이라고 덧붙였다.
이 명장에게 자수란 예술이고 숨 쉬고 사는 것이다. 꽃을 보고 단풍을 즐기면서도 자수의 소재를 생각한다.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 한 4개의 단풍잎도 스마트폰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도 다시 태어나면 자수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똑같은 삶이 지겨울 것 같아서다. 대신 다른 예술 활동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예술은 포도주입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즐길 수 있게 하죠.” 이 명장은 역시 예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