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동성고등학교 시청각실에 모인 학생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평소 깊게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삶의 요소들을 철학적으로 접근해 사유하는 강좌가 열렸기 때문이다. 어린이도서관이 지역 청소년의 인문학적 사고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윤은주 숭실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가 강의를 맡았다.
윤 교수는 “꼭 필요하지만 언제 어떻게 꺼내 써야 할지 모르는 소중한 것들을 다락방에 숨겨두곤 한다”며 “우리의 삶 속의 ‘사랑’이 그렇다”고 운을 뗐다. 그는 “현대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며 “사랑을 정의 내리기 어려워했던 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편’가운데 하나인 ‘향연’의 내용을 예를 들었다. ‘향연’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뜻한다. 플라톤의 ‘향연’은 기원전 416년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아가톤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철학자들이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담은 것이다. 윤 교수는 고대 철학자들이 에로스를 통해 사랑을 어떻게 사유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위대한 신으로 찬양받아 마땅하다”며 “에로스가 신의 으뜸이듯 가장 좋은 것을 주고받는 관계가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파우사니아스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토스와 부부 사이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바람을 피워 에로스를 낳았다”며 “에로스는 고결한 천상의 사랑과 저속한 사랑을 모두 담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향연’의 화자(話者)는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진다”며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에로스를 논했다”고 설명했다. 디오티마의 이야기는 빈곤의 여신 페니아가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프로디테의 탄생 축하연에 가서 풍요의 신 포로스를 유혹해 에로스를 낳았다는 것. 윤 교수는 “아버지의 부유함과 어머니의 빈곤함을 반반 닮은 에로스는 삶의 반만 채워진 중간자”라며 “소크라테스는 부족한 나머지 반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에로스처럼 자신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는 과정이 사랑이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비어있는 부분을 무엇으로 채워야 부유해진다고 생각했을까”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진지하게 듣고 있던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윤 교수는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지혜’라고 여겼다”며 “따라서 자신에게 부족한 지혜를 채우는 과정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여러분도 자신의 비어있는 부분을 찾아 지혜롭게 채우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며 “그러나 내가 어떤 것이 부족한지 알지 못하면 채울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의 부족한 점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자기애’”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타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자기애’가 있어야 나의 빈 부분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고 지혜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어린이도서관이 마련한 윤 교수의 ‘다락방에 숨겨둔 삶의 보물들’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동성고 1학년 우지민 군은 “일상 속에 철학적으로 깊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강의였다”며 “플라톤의 ‘향연’을 비롯해 책을 많이 읽으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2학년 전재호 군은 “사랑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며 일상의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김지민 동성고 사서 교사는 “학업에 쫓겨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가 많지 않은 학생들에게 철학적인 사고를 이어가는 방법을 알려준 유익한 강의였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사고를 높이기 위한 고인돌 2.0 강좌는 3월부터 이달 말까지 모두 80여개 중·고등학교에서 실시된다./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