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시한 ‘이재명표 지원금’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공짜로 돈을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습니까만은, 첫 번째 문제는 지원 시기가 미묘해 ‘금권선거’가 우려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우리나라 재정 상황이 돈을 마구 퍼줄 정도로 넉넉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코너의 제목이 ‘뒷북경제’인만큼 이번에는 재정 여건에 대해서만 짚어보겠습니다.
나라 살림 상태에 대해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의 시각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 후보는 최근 “곳간에 돈이 꽉꽉 들어차고 있다.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이 가난해서는 안 된다"며 몇 십 조 원쯤 더 써도 된다는 입장입니다.
기재부 생각은 다릅니다. 내년 나라 수입에서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赤字)는 56조 원에 달해 국가 채무가 1,000조 원을 돌파하게 되는 상황이라 허리띠를 풀 여건이 못 된다는 겁니다. 긴축으로 돌아선 미국, 독일 같은 나라와 재정 운영이 정반대로 가는 것도 부담입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 신용등급을 내리기라도 할 경우 삽시간에 위기가 퍼질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대통령도 아닌 이 후보의 말 한마디에 예산안을 뒤집는 것도 기재부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당정 내부에서조차 파열음이 나오고 국민들의 반대 의견의 커지면서 막다른 길에 몰린 민주당이 ‘마법' 같은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원금 예산을 2022년도 본예산에 반영하고 그 재원은 올해 초과 세수를 내년으로 납부 유예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인데요. 세금을 올해 거두지 말고 내년에 받아 회계로 잡아놓으면 내년에 쓸 돈이 더 늘어난다는 일종의 ‘분식회계’입니다.
통상 초과 세수는 정상 절차 대로라면 회계 결산을 거쳐 ‘세계잉여금’ 항목으로 편입된 뒤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세 및 교부금 정산(40%)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자 및 채무 상환(30%) △다음 연도 세입 이입(30%)의 순서로 배분됩니다. 가령 올해 10조 원의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3조 원가량만 내년 예산에 반영해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올해 받을 세금을 내년으로 미루면 지방세 교부 의무만 남고 채무 상환으로 반영해야 할 의무는 사라져 그만큼 가용 재원이 늘어나게 됩니다.
언뜻 마술 같은 방법이지만 반응은 차갑습니다. 정의당에서는 ‘매표’ 행위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왔습니다. 여기다 납부 유예하겠다는 세금의 구체적 세목(稅目)과 규모를 기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세금을 얼마나 어떻게 내년으로 미룰지 분석이 안됐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올해 세금 대부분은 이미 납부가 완료돼 납부 유예의 실효도 거의 없습니다. 국세는 크게 나눠 소득세·법인세·부가세 3대 축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사업소득세나 법인세 등 덩치가 큰 항목은 이미 올해분 납부가 마무리 돼서입니다. 미루고 싶어도 미룰 세금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은 셈입니다. 올해 5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납부 기한이 12월 15일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지방이 가져다 쓸 돈이기 때문에 납부 유예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밖에 목적세로 분류돼 용처가 미리 정해져 있는 유류세(교통세) 등도 납부 유예를 해봐야 ‘이재명 지원금’에는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국내의 한 증권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최근 금리가 급등하고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당이 국채를 더 찍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국세 납부 유예 같은 실체가 모호한 말을 하는 것도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는 전략으로 해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후보가 꼭 전국민에게 지원금을 주고 싶다면 나라 살림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뒤 국채를 찍어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정직하게 발표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