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바다 내음을 한숨에 삼켜 먹을 수 있는 굴이 제철이다. 이때는 꼭 생굴을 잘 못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함께 들려온다. 흔히 식중독은 음식물이 부패하기 쉬운 여름철에 많이 걸리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살모넬라, 병원성대장균 등 세균성 식중독이 아닌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식중독은 겨울철이 더 많이 발생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면서 일교차가 커지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온이 낮아 여름철보다 음식물 보관과 관리에 덜 신경을 쓰는 게 주요 원인이다. 겨울철에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식중독을 더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식중독은 최근 5년간 발생한 총 230건, 4,817명 환자를 분석한 결과, 11월부터 증가해 겨울철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월 4건, 8월 11건, 9월 7건 등에 머물던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은 11월 25건(471명)으로 급증한다. 이후 12월 30건(534명), 1월 40건(349명), 3월 31건(931명) 등으로 집중된다.
노로바이러스는 1986년 미국 오하이오주 노워크 지역에서 발견돼 처음에는 '노워크 바이러스'로 불리다가 2002년 이름기 바뀌었다. 노로 바이러스는 27~40nm(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로 매우 생존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60℃에서 30분간 가열해도 감염력이 떨어지지 않고, 냉동 상태인 영하 20℃에서도 죽지 않는다. 특히 물속에서도 430일 정도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존력 만큼 전염성도 강하다. 노로바이러스는 1g당 100억 마리가 기생하는데 인체에 10마리만 들어와도 쉽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염된 음식물이나 지하수를 섭취하는 것 외에도 감염자와 직·간접적인 접촉만으로 전파되는 게 특징이다.
평균 12~48시간 잠복기가 지나면 구토, 설사와 같은 증상이 발생한다. 24~60시간 동안 지속되는데, 소아는 구토를 많이 하고, 성인은 설사가 흔하다. 더불어 두통, 발열, 오한, 근육통이 동반되는 경우도 많다.
강한 전염성 탓에 노로바이러스는 무엇보다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음식점, 어린이집·유치원과 같이 겨울철에 밀집된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경우에는 단체 감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노로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음식물을 만들 때부터 위생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음식 조리 전·후에 반드시 손을 씻고, 음식을 만들 때는 위생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노로바이러스는 입자가 작고 부착력이 강하기 때문에 세정제를 이용해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가락, 손등까지 꼼꼼히 씻는다.
다음으로는 음식물을 충분히 익혀 먹는 게 중요하다. 굴과 같은 어패류는 중심온도 85℃에서 1분 이상 완전히 익혀야 하며, 소독되지 않은 지하수는 노로바이러스에 오염되기 쉽기 때문에 반드시 끓여 쓰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과메기, 황태, 마른김 등 수산물도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과일과 채소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세척해야 한다. 조리 기구는 열탕 소독하거나 살균 소독제로 세척해야 한다. 조리대나 개수대도 중성세제나 염소 소독제로 소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집콕 생활'로 음식 배달이 늘어날 때, 실외에 음식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받으면 겨울철이더라도 가능한 빨리 회수해야 한다. 즉시 섭취하고, 음식이 많으면 미리 작은 용기에 나눠 냉장 보관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배달음식 위생관리 매뉴얼'에 따라 조리 종사자는 철저히 위생 관리를 하고, 배달 종사자도 배달용 운반 기구를 청결하게 세척과 소독하도록 한다. 배달할 때는 따뜻한 음식과 차가운 음식이 서로 닿지 않게 구분해 남아야 한다.
조현 순천향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추운 날씨에 노로바이러스가 많이 생기는 이유는 기온이 낮아 어패류나 해산물, 음식이 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충분히 익히지 않고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노로바이러스는 노인이나 소아에게 심각한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혹시나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더이상 전파를 막기 위한 관리도 필수적이다. 우선 구토, 설사 등 식중독 증상이 있는 사람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즉각 제외시켜야 한다. 증상이 회복된 후에도 2~3일간은 조리에서 배제하는 것을 권고한다.
구토와 설사와 같은 노로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될 경우에는 즉시 의료 기관을 방문해 진료 받는다. 다른 사람과 직·간접 접촉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에 빠른 진료와 치료가 중요하다. 노로바이러스 식중독 환자가 주변에 발생했다면, 분변과 구토물, 침, 오염된 손을 통해 감염이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곳곳을 소독해야 한다. 특히나 구토물은 위생용 비닐장갑,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오염물이 옷에 묻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치워야 한다.
노로바이러스는 특별한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탈수나 전해질 불균형에 대한 조절이 필요하다. 심한 탈수에는 정맥주사를 통한 수액공급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영유아나 고령환자는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의 진찰이 권고된다. 설사한다고 무조건 금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자극이 적은 흰죽과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섭취하고 생수보다는 반드시 끓인 보리차를 마셔야 한다.
김경오 가천대 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노로바이러스 장염은 회복 후에도 재감염될 수 있다”며 “바이러스 감염 후 생기는 면역이 6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고, 바이러스 종류도 150여 종으로 다양하며 변이도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