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은 때 이른 추위 탓에 예년 같은 단풍 구경이 어렵게 됐다. 단풍 명소라는 곳들은 절정을 맞기도 전에 냉해를 입으며 초겨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만추의 오색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저 멀리 고산이 아니라 일상과 가까운 도심이다. 가을의 끝자락 서울을 곱게 물들인 단풍 명소 4곳을 추천한다.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남산부터 한나절 이상 걸리는 도봉산까지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들만 골라봤다.
가을의 남산은 산자락 곳곳이 붉게 물들어 화사하다. 가을에는 N서울타워가 있는 정상보다 북측순환로가 더 인기인데 단풍이 길게 이어지고 길 가장자리에 냇물이 졸졸 흐르면서 자연의 정취를 더하기 때문이다. 북측순환로는 무장애 길로 조성돼 유모차나 휠체어를 끌고 가도 편안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북측순환로는 남산 국립극장이나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에서 진입하면 된다. 남산 국립극장에서 산책을 시작하면 소파로까지 3.3㎞, 중부공원녹지사업소에서 시작하면 1.5㎞다. 순환로는 조지훈 시비와 와룡묘·소파로를 지나 백범광장에 닿는다. 광장 끝은 한양도성 남산 구간과 연결된다. 해질녘 찾아가면 단풍과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북한산 산등성이는 서울 북쪽 끝자락에 병풍처럼 펼쳐진 거대한 성벽 모양이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설악산 못지않은 짙고 깊은 단풍 숲이 끝없이 이어지는 ‘대남문 코스’로, 북한산성 탐방지원 센터에서 출발해 대서문~중성문~대남문(정상)~구기계곡으로 이어지는 총 길이 9㎞ 구간이다. 길이만 보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북한산 전체 등산로 중 가장 쉬운 코스라 할 만큼 길이 순탄하다.
단풍은 대서문 인근부터 중흥사로 가는 구간을 으뜸으로 친다. 중흥사를 지나 대남문까지 가는 길은 다소 경사가 느껴지지만 정상인 대남문 근처 문수사에 다다르면 우뚝 솟은 북한산 봉우리 뒤로 서울 도심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대서문과 중흥사를 지나 대남문까지 오르는 데 약 3시간, 구기계곡 방향으로 하산하는 데 1시간 30분이 소요되니 넉넉하게 5시간을 예상하고 산행에 나서면 된다.
우이령을 사이에 두고 북한산과 마주한 도봉산도 울긋불긋 오색 단풍이 장관이다. 도봉산 단풍놀이는 총 길이 8.5㎞의 망월사 코스가 좋다. 망월사에서 영산전을 바라보면 그 뒤로 도봉산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산자락 따라 단풍이 절정이다. 망월사 뒤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포대 능선에 올라서는 순간부터는 길이 험해지니 단풍 구경이 목적이라면 망월사에서 하산하는 게 좋다.
북악산은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한양도성의 역동적인 건축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등산 코스를 갖추고 있다. 북악산 한양도성길은 와룡공원에서 출발해 말바위 안내소로 향한다. 말바위 전망대에 도착하면 발 아래로 성북동과 삼청각 일대가 단풍에 울긋불긋 물든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성벽을 따라가다 만나는 곡장 전망대에서는 북한산을 시작으로 롯데타워, 남산 일대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총 길이 3.5㎞로 2시간이면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