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국내증시

부실공시 기업 절반, 제재금 한푼도 안냈다

올 지정 107곳 중 53%만 제재금

1조 수주계약 번복에도 처벌 미미

벌점도 대부분 명목상 제재에 그쳐

기업 공시의무 경시…투자자만 피해





지난달 5~6일 이틀간 코스피 상장사 하나제약의 주가는 6.5% 떨어졌다. 주주들은 하락한 영문을 몰랐다. 일주일이 지나 하나제약은 일부 사업의 영업정지 사실을 공시했다. 이달 한국거래소는 지연 공시를 이유로 하나제약을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했지만 벌점을 부과받았을 뿐 별도의 제재금은 없었다.



올해 지정된 불성실 공시 기업 두 곳 가운데 한 곳은 제재금을 한 푼도 부과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경영 관련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공시 시스템이 정착돼야 하지만 규정 위반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제재가 느슨해 상장사들이 공시 책임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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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연초부터 이달 12일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된 기업(107곳) 중 53%(57곳)만이 제재금이 부과된 것으로 집계됐다. 공시 규정을 위반한 기업 중 제재금을 낸 곳은 △2018년 55% △2019년 52% △2020년 53% 매년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가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시 오류를 낸 기업의 절반가량이 한 푼도 내지 않고 벌점만으로 징계가 일단락된 것이다. 올해 57개사가 납부한 제재금은 총 15억 4,800만 원, 기업당 평균 징계금은 2,700만 원에 그쳤다. 거래소는 부실 공시를 낸 기업을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해 기업과 투자자에게 경고장을 날린다.

제재금을 피한 기업에 대해서는 거래소가 사안의 경중을 심사해 벌점을 차등 부과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자본시장에서 평판이 일부 훼손되는 것 이외의 큰 타격을 입는다고 보기 어렵다. 거래소는 벌점이 8점(유가증권시장 10점) 누적되면 주권 매매를 하루 정지시키고 15점 이상 누적된 기업은 상장사로서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상장 실질 심사대에 올린다. 다만 아무리 큰 공시 오류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규정상 가할 수 있는 최고 강도의 벌점은 12점으로 제한되며 지난 4년간 불성실 기업이 받은 평균 벌점은 4.9점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1년이 지나면 청산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벌점은 명목상 제재에 그치는 실정이다.

거래소의 낮은 징계 수위가 기업에 공시 의무를 가볍게 여기고 악용할 여지를 만들어 투자자의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업 환경 급변으로 인한 공급계약 해지, 유상증자 철회 등은 회사로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공신력 있는 정보로 인식되는 공시 내용이 뒤집히면서 투자자가 피해를 입는 일은 줄지 않고 있다. 지난 2015년 78곳에 불과했던 불성실 공시 법인 수는 지난해 75% 증가한 136곳까지 늘었다. 이달 12일 기준 올해 불성실 공시 법인 수는 107곳으로 올해도 130여 개 기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말 코스닥 상장사 엘아이에스는 1조 원에 육박하는 마스크 수주 공시를 낸 뒤 일주일 뒤 이를 철회했다. 공시 직후 주가가 급등한 5거래일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엘아이에스를 75억 원 순매수했지만 번복 공시가 나오자 주가는 26% 이상 곤두박질쳤다. 이후 거래소는 해당 공시 사고를 ‘고의에 의한 과실’이라고 판단했지만 엘아이에스에 대한 징계는 벌점 9.5점, 제재금 3,800만 원에 그쳤다.

제재 규정 강화는 기업 비용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 측면 만을 부각시키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위원은 “2018년께 규정 강화 이후 기업들이 새 공시 체제에 적응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모습”이라면서도 “투자자 보호 충실을 위한 규정 강화는 영세 기업에는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양쪽이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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