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혁신교육의 아이콘인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등을 다녀왔는데 해외 대학들은 교육혁신하고 산학 벤처밸리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어요. 사립대들은 재정이 녹록치 않은데 기부도 많이 받고 기술 사업화를 통해 로열티도 많이 받아야죠. 차기 정권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대학들에 지원을 늘렸으면 합니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16일 ‘제1회 대학 기업가 정신 토크 콘서트’ 한양대편에서 “애리조나주립대는 학과가 있으면 싸운다고 전공은 있지만 학과를 없애고 스쿨로 만드는 등 혁신에 나서고 있더라”며 이같이 밝혔다. 마이클 크로우 총장이 20년째 사령탑을 맡고 있는 이 대학은 온라인 강좌를 만들고 기부금을 받고 기술 사업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대학의 경우 하버드대가 적립된 기부금만 63조원에 달할 정도로 기부문화도 활성화돼 있지만 대학 자체도 기업가 정신 고취에 적극적이다.
항암제 개발사를 창업해 시리즈B 투자까지 받은 윤채옥 한양대 교수는 “3년 전 미국 MIT에서 (바이오 창업을 수 십 개 한) 밥 랭어 교수 연구실에 연구년을 갔다가 굉장히 놀랐다”며 “MIT는 물론이고 연구 중심이던 하버드도 변했다. 천지개벽을 느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MIT 주변에 몰려 보스톤은 명실상부한 바이오 메카가 됐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뜬구름 잡는 식의 연구가 많았으나 이제는 산업을 염두에 두는 쪽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학교가 산업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해야 미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혁신적인 수소 탱크 스타트업을 창업한 하성규 한양대 산학협력단장은 논문 위주의 대학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수 임용·승진 과정에서 논문 외에도 기술 사업화 등 다양한 평가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는 “교수 창업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적은 게 현실인데 논문 위주의 오랜 관성 때문”이라며 “평가방식이 바뀌면 창업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조교수·부교수 과정을 통해 연구력을 쌓고 사회와 산업에서 원하는 것을 감안해 창업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교수가 은퇴하면 연구결과와 장비가 물거품처럼 없어져 안타까운데 사회와 계속 호흡하려면 창업이 필요하다”며 “대학원생도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게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교수도 학생들에게 지분이나 스톡옵션을 주고 같이 창업하는 게 좋다. 정부와 대학의 관심,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최근 우주 서비스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창업한 김덕수 한양대 교수는 “2년여 고민 끝에 한양스타트업아카데미에 참여하며 사업가 마인드를 키웠다”며 “내년 1월 초 CES에도 출품하는데 논문을 주로 쓰는 교수와 다른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을 느낀다. 굉장히 재미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와 동기부여, 교수 평가 시스템 개편을 문화·생태계를 잘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유튜브로 참여한 한 대학원생은 “연구 논문을 창업과 관련된 논문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창업기반과 관련지식을 함께 축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총장은 “이제는 BK사업이라든지 THE와 QS 평가도 질적 평가로 많이 바뀌었다. 교수들이 연구해서 좋은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은 최소한의 요구조건”이라며 “좋은 연구력이 있어야 기술이전과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어 “미국 대학에서 로열티도 많이 받고 창업도 많이 하는 것은 기술이전조직(TLO)이 잘돼 있기 때문”이라며 “더 연구력이 좋은 분, 가슴 뛰는 분을 신임 교수로 모시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그는 현재는 정부의 연구개발(R&D) 과제를 통해 대학에서 기술을 축적해 기술 사업화에 나서고 있는데 양에서 질이 나오기 때문에 머잖아 기술 사업화의 꽃을 피울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한양대는 에리카(ERICA)캠퍼스를 포함해 연 3,500억원의 연구비를 수주하고 있다.
그는 대학 주변 창업밸리 조성에 대해서는 “에리카캠퍼스는 캠퍼스 혁신파크를 조성하는데 여러 외국기업이 들어오려고 한다. 본교에서서는 성동밸리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며 산학일체화 의지를 피력했다. 특히 그는 “미국 프린스톤대는 4개 생명과학 지식재산권(IP)으로 연 1,600억원의 로열티를 받는다”며 “한양대도 의대·자연대·공대가 어우러져 생명과학연구소를 곧 출범시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김 총장은 교육 혁신에 대한 소신도 적극 밝혔다. 그는 “한양대는 전공 교과목의 20%를 기업에서 문제를 주고 평가받고 경진대회를 하는 IC-PBL(산업 연계 프로젝트 수업)을 공대는 말할 것도 없고 정외과·철학과 등 인문·사회쪽에서도 하고 있다”며 “기업가 정신 교육을 시켜 취업 이후에도 창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실제 이 자리에서 한 학생은 “기업이 참여해 피드백도 받고 실무경험을 쌓게 돼 확실히 좋다”고 거들었다.
김 총장은 차기 정권에서는 기업가형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그는 “다음 정권에서는 교원이든 학생이든 창업 잘하는 대학을 지원하는 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대학에서 기술 사업화를 활성화해 일자리 등 더 많은 것을 창출할 수 있게 하는 대선후보가 나왔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전상경 한양대 창업지원단장도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우리가 미국, 캐나다 다음으로 벤처 투자가 많다. 하지만 성과 측면에서는 혁신·창의적인 기업이 적다”며 “기술을 중시하는 대학이 혁신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달라.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대학 평가를 외부에서 너무 연구실적 위주로 평가했는데 창업이나 기업가 정신 성과가 높은 대학을 좀 더 보상해주면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대학이 정말로 변해 혁신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며 “보상이 따라오면 움직인다. 우리도 미국과 같은 스타트업 문화로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자리에서는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대한 조언도 쏟아졌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과학기술은 노력한만큼 된다. 스타트업이 가장 어려운 게 마케팅·영업”이라며 “교수들이 대학원생과 학생들에게 창업시키고 일정 지분을 받고 인맥과 지혜로 지원하면 10개, 100개도 창업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마케팅을 염두에 둔 R&D가 필요하다. 멘토를 많이 두고 먼저 이들로부터 종잣돈을 받는 게 효과적”이라며 “성공을 위해서는 편이 많아야 한다. 신뢰를 만들고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김갑순 한양대 글로벌멘토단장은 “정부와 벤처캐피털의 벤처·스타트업 투자가 양적으로 굉장히 활성화됐다”며 “하지만 많은 스타트업이 미국 등 해외진출에 애로가 있는데 엔지니어도 영어로 충분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네트워킹도 잘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실리콘밸리처럼 디베이트(논쟁) 문화를 통해 합의하면 서로 격려하고 새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민우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은 “창업은 성공하든 못하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 닥창(닥치고 창업)을 주장한다. 인생대학인 창업을 하면 능력을 발휘하고 머리가 돌아간다”며 “건물주나 비트코인 투자에 관심 갖는 사회가 아니고 창업해 대박나는 기업가 정신이 활성화된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호 한양대 교수는 20년 전 닷컴시절 창업 실패에 이어 두 번째 창업을 한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과거 창업을 너무 로맨틱하게 봤다. 파는 재주도 없었다. 남을 잘 이해 못하고 내가 최고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독이 됐다”며 “그래도 재도전할 가치를 느껴 다시 창업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많은 교수들이 창업에 대한 동기 부여가 잘 안돼 신기술에 도전하기 보다는 과거 하던 영역에 머무르거나 연구 목적으로만 한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윤채옥 교수는 “창업할 때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성공을 위해 많은 고생을 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며 “기술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있을 때 창업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협력자가 나타난다. 창업자들이 외로운데 같이 조언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한양대 졸업생으로 AR 글래스 렌즈를 개발한 김재혁 레티널 대표는 “재학시절 기업가 정신 수업과 산학협력단 프로젝트가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연구실에서 일하며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배웠다”며 “투자자는 스타트업의 기술과 아이디어 못지 않게 팀을 더 많이 본다. 실패를 극복할 역량을 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날 학생 창업가들의 제안도 많았다. 창업한 김용석 대학원생은 “인문·사회 분야 학생들은 고민이 더 많다”며 “학교가 스타트업의 시제품을 검증받는 테스트베드가 되고 연구 데이터를 공유하면 어떤가”고 질의했다. 청년주거 사업을 하는 박준길 졸업생은 “스타트업에 경제 지원이나 창업 기숙사·오피스를 지원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에 전상경 단장은 “학교가 보유한 데이터,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나 검토하겠다”며 “연 150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데 공간 지원을 늘리고는 있으나 돈 문제에 봉착해 있다”며 말했다. 이병희 한양대기술지주 대표는 “엑셀러레이터로서 18개사를 엑시트 했는데 여유가 생기면 인문·사회·예체능계 창업 지원이나 창업 공간 확대에 쓸 수 있는 기여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