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남긴 상처와 후유증은 심각하다.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망자와 전염 속도는 세계인들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포로 몰아넣었다. 각국이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면서 협력을 강조한 뒤 정작 백신 수급량 부족이 현실화하자 자국 우선 백신 이기주의에 불이 붙었다.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은 백신을 구입할 자금력이 부족한 것은 물론 백신 물량도 확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선진국들을 상대로 백신 부스터샷을 중단하고 그 물량을 아프리카로 돌려야 한다고 호소했을까.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한국에 남긴 상처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으로는 지난해 4월 실시된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했다. ‘코로나19 극복에 대한 기대감’이 여당을 향한 몰표로 이어지면서 정치적 균형점이 무너졌다. 하지만 여당은 이 같은 국민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하는 기업에 멍에를 씌웠다. 기업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올해 초 중대재해법도 가결하면서 기업들에 재갈을 물렸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증가와 함께 강화된 방역 수칙으로 자영업자들은 낭떠러지에 내몰렸고 청년들의 실업 대란도 현실화됐다. 여당은 대신 추가경정예산으로 천문학적인 재난지원금을 뿌렸다. 시중에 풀린 자금과 저금리가 겹친 데 이어 전 세계의 공급망 문제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코스트 푸시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상반기 체감경제고통지수를 보면 청년층(15~29세)의 체감 실업률은 25.4%로 30대(11.7%)의 2.2배, 40대(9.8%)의 2.6배에 달했다.
물론 코로나19 확산으로 돈을 뿌린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곧바로 경기 침체 경고로 이어졌고 각국 정부는 무차별적인 재정 투입을 시작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약 4조 달러를 투입했고 조 바이든 정부는 1조 8,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살포했다. 급기야 미국의 비영리 초당파 재정연구기관인 책임연방예산위원(CRFB)도 장기 재정 전망 보고서를 토대로 오는 2051년 국가채무가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늘어 주요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CRFB가 5월에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가 국가채무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불공정한 유산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도 코로나19와 경기 침체를 명분으로 한 무차별적 재정 투입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한국의 사정이 미국 등 세계 각국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퍼주기 논쟁에 불이 붙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불과 넉 달여 앞두고 여야 후보는 또다시 재난지원금과 소상공인손실보상제를 꺼내 들었다. 국민들은 이에 반대한다.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29.3%만 공감하고 67.9%는 반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가파른 국가채무 증가세에 경고등을 울리며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CRFB처럼 급격한 국가채무 증가를 우려한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벤트로 이 같은 포퓰리즘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랏돈으로 한 표를 얻겠다는 여야의 얄팍한 선거 전략으로 대한민국 재정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규정했다. 지금 당장은 거저 가져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대가를 지불한다는 의미다. 100여 일 남은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대한민국 재정에 코로나19가 또 다른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후보자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는 러시아 속담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