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日, 임금 30년 정체에 구매력 뚝…기시다, 급기야 577조 돈 풀기

[일본의 3대 미스터리]

■ 저물가·초완화 정책 원인은

실질임금 90년 이후 4.4% 올라

비정규직 비율은 18%P나 급등

노동자 희생으로 가격인상 억제

10월 소비자물가 '나홀로 0%대'

오랜 엔저로 기업 혁신의지 상실

인프라 등 성장동력에 투자 시급





지난 10월 아사히신문은 충격적인 통계를 공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0년 ‘구매력 평가(물가 수준 고려)’ 자료에서 나온 통계인데 일본의 실질임금은 연 424만 엔(약 4,393만 원)에 불과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3위인 일본으로 보기 어려운 낮은 수준이었다. 실제 OECD 가입국 35개국 중에서도 22위에 그쳤다.



더 놀라운 것은 임금의 상승률이다. 30년 전인 지난 1990년과 비교하면 18만 엔(4.4%)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과 영국의 실질임금은 각각 47.7%, 44.2% 올랐다.

장기 불황에 시장 가격 결정권 왜곡

일본 저물가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1990년대 장기 불황과 맞닥뜨린다.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계속 이어져온 불황으로 기업의 가격 결정권 자체가 왜곡됐다는 분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종신 고용 전통이 강한 일본 기업들이 장기 불황의 여파로 임금 인상에 미온적이 되고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 수만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1990년 20%에 불과했던 비정규직 비율은 2020년 38%로 18%포인트나 늘었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65% 수준이라는 점에서 소비 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랜 불황→기업의 임금 상승 억제→소비 여력 부진→저물가 고착’이라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본 정부는 돈을 풀기에 여념이 없다. 19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사상 최대 규모인 55조 7,000억 엔(약 577조 원)의 돈을 푸는 경제 대책을 발표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닛케이는 “기시다 총리가 임금 상승과 비정규직 축소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플레 우려에 초완화통화정책 고수


일본을 보면 글로벌 경제와는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아시아 등 상당수 국가들이 인플레이션 우려에 휩싸여 조기 기준금리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초완화 통화정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저물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1% 상승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하면 0.7% 하락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은커녕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판이다. 실제 일본 엔화는 돈풀기 덕에 최근 달러당 114엔 수준까지 하락해 4년 8개월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아타나시오스 밤바키디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외환 전략 이사는 “일본은행은 내년에도 제로 금리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과 다른 정책 차이로 인해 엔화가치는 올해 말 달러당 116엔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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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부진…기시다 ‘성장 해법’ 고민

일본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8% 감소하며 반년 만에 역성장했다. 일본 경제를 떠받드는 핵심 축인 수출이 2.1% 감소하면서 성장률을 끌어내린 것이다.

일본 기업의 성장세가 꺾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OECD에 따르면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1993년 2.53%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올해 0.5% 수준으로 급감했다. 미국(2%), 유로존(1%대) 등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생산성도 1.6%에서 0.4%까지 하락했다. 고용 문제를 풀 핵심 키를 쥐고 있는 기업들이 성장을 못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엔저 효과가 없는 게 더 치명적이다. 엔저 수혜 대상인 제조업 비율이 GDP 대비 1970년대 35%에서 최근 20%로 낮아졌고 오랜 엔저로 기업의 혁신 의지조차 떨어졌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되레 엔화 약세로 자원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생산자물가지수(PPI)만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본의 지난달 PPI 상승 폭은 전년 동월 대비 8% 증가해 40년 만에 최고 상승 폭을 기록했다. 오른 물가를 가격에 반영해야 하지만 안 그래도 구매력이 낮은 고객을 잃을까 기업은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외신들은 “기시다 총리가 임금 상승과 비정규직 축소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효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라며 “인프라 투자 등 성장 동력을 확보할 방안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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