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기업이 보유한 비트코인, 무형자산 아닌 금융자산"

■회계기준원, 가상자산 회계처리 개선 요구

‘코인=금융자산’ 日 접근방식 지지

"금융자산 분류땐 재무상황 파악 도움"

IASB도 일본 제안 긍정적으로 검토


한국회계기준원이 투자나 거래 목적으로 보유한 가상자산을 금융자산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가상자산의 과세 유예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회계처리기준을 만드는 공공기관인 회계기준원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일 회계 업계에 따르면 회계기준원은 지난달 열린 한중일 회계기준제정기구 회의에서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다루는 현행 IFRS 회계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일본의 지적에 동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현행 무형자산 회계 처리 방침의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일본 회계기준제정기구는 회의에서 국내 가상자산 회계기준의 토대가 된 현행 IFRS(IAS 38)가 업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가상자산 관련 IFRS를 제정할 당시 고려되지 않았던 투자나 거래 목적의 가상자산 거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까닭에 투자 목적으로 보유한 가상자산은 무형자산이 아닌 당기손익공정가치가 반영되는 금융자산(FVPL)으로 처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여당 내부에서도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분류해 과세하려는 정부 방안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실정이다.

암호화폐를 팔아 얻은 기타소득이 연 250만 원을 넘으면 20%의 세금을 매기는 소득세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올해 10월 과세를 계획했지만 ‘인프라 준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국회의 판단에 내년 1월로 미뤘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암호화폐 과세 유예를 꺼내 들었고 과세 1년 유예와 공제 한도를 높이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 적용되는 가상자산 회계기준은 2019년 9월 IASB 산하 IFRS해석위원회와 회계기준원이 IFRS에 기반해 내놓은 방침을 따르고 있다. 이 기준은 기업이 영업 과정에서 가상자산을 판매 또는 중개 목적으로 보유·매매하면 재고자산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이외의 모든 경우에는 무형자산으로 분류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 대부분은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분류해왔다. 하지만 기업들은 판매보다 투자 목적으로 가상자산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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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기준원 관계자는 “이번 회의에서 한국은 무형자산을 분류하는 현행 IFRS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동의했다”며 “투자나 거래 목적에 따라 그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일본의 접근 방식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은 국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IFRS해석위원회 내부에서도 가상자산은 생산 활동에 쓰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무형자산의 성격과 명확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IFRS를 해석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IASB에 의견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다.

무형자산은 장부 가격보다 낮아지면 차액을 평가손실로 반영하지만 반대로 가치가 올라가면 증가액은 손익에 포함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이 변동성을 키우는 상황에서 무형자산으로 분류해버리면 자칫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가상자산이 금융자산으로 분류되면 가격 하락뿐 아니라 상승도 고려해 결산 시기마다 평가손익으로 표기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의 실질적인 재무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일본 측의 판단이다. 현재는 기업이 가상자산을 처분해 이익을 냈을 때만 영업외이익으로 반영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IASB가 회계기준원의 지지를 받은 일본 측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는 점이다. 안드레아스 바르코 IASB 위원장은 “현행 IFRS에서 투자 목적 가상자산의 공정 가치 평가가 가능한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 가상자산 회계기준 개선을 위한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IASB는 각국의 의견 취합을 거쳐 어젠다 협의 주제로 결정된 사안에 대해 내년부터 오는 2026년까지 회계기준 제정과 수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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