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에 합병돼 코스닥에 상장한 A사는 최근 금융 당국으로부터 감사인 교체 통보를 받았다. A사가 ‘3년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해 감사인 직권 지정 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직권 지정이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회계 투명성 저하가 우려되는 기업의 감사인을 강제로 정해주는 제도다.
그런데 A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최근 3년간 영업 적자를 본 것은 지난해뿐이다. 상장 직후 다음 연도에 영업손실을 보자마자 감사인을 강제로 교체당한 것이다. 합병 직전 스팩의 영업손실(2년)과 합병 직후 A사의 영업손실(1년)을 합쳐 직권 지정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스팩은 합병하기 전에는 영업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스팩 합병 기업만 상장 직후 1년 뒤 영업손실을 봐도 감사인을 지정받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19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2018년 외부감사법이 개정되면서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한 상장사들도 직권 지정 대상에 추가됐다. 영업손실이 계속 난 기업의 경우 분식회계의 유인 역시 높아지는 만큼 금융 당국에서 직접 감사인을 지정해줘 강도 높은 회계감사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3년 연속 영업손실’ 요건이 스팩 합병 상장사에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상장 기업은 3년 연속 영업 적자를 볼 때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받는데 현행 제도대로면 스팩 합병 기업들은 상장 직후 1~2년만 영업손실을 봐도 직권 지정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스팩 합병 시점부터 직권 지정 요건을 따지도록 금융 당국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이유다.
스팩은 순수하게 비상장사 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컴퍼니’다. 비상장사는 스팩 합병을 통해 증시에 우회 상장할 수 있다. 비록 실질적인 법인은 피합병 비상장사지만 주식 시장에 상장한 ‘껍데기’는 여전히 ‘스팩’인 셈이다.
문제는 현행 외감법에서 ‘상장 법인’, 즉 스팩이 상장한 시점부터 3년 연속 영업손실 여부를 계산한다는 점이다. 스팩은 아무 영업 활동도 하지 않는 페이퍼컴퍼니라 영업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A사처럼 스팩 합병 상장한 지 1년이 되자마자 곧바로 직권 지정을 받는 사례가 나오는 이유다.
직권 지정을 받으면 ‘재무 투명성 위험군’으로 낙인이 찍혀 투자 유치에 불리할 수 있다. 대형 회계법인을 직권 지정한다는 점도 감사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다. 스팩 합병 상장사 가운데 대다수는 시가총액이 5,0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해 중소형 회계법인을 주로 선임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3년 연속 영업 적자 요건이 직권 지정 사유에 들어온 취지는 투자자 보호였다”며 “그런데 스팩 합병 여부와 투자자 보호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거래소의 ‘관리종목’ 지정 요건과도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거래소 규정에서는 ‘스팩 합병’ 시점부터 관리종목 포함 여부를 계산한다. 거래소에서는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보는 기업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해 잠재적인 상장폐지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린다. 거래소 관계자는 “옛날부터 스팩 껍데기에는 (관리종목) 재무 요건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피합병 법인을 기준으로 직권 지정 여부를 따질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