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시 공장에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반입하려던 SK하이닉스의 계획이 미국의 제동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불똥이 중국에 첨단 생산 시설을 둔 한국 기업들에 튀는 양상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 인텔에 이어 동맹국 기업의 중국 생산까지 제동을 건 것은 중국 첨단 산업의 기술적 진보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도 주력 산업의 중국 진출과 관련해 방향 전환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 기업들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첨단 제품의 생산 거점을 상당 부분 중국에 두고 있다. 미국이 D램 첨단화의 핵심 장비처럼 다른 제품의 설비 반입을 계속 막는다면 투자 적기를 놓치고 기술 경쟁력에 타격을 받게 된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대하다. 우리 수입의 23%를 중국이 차지하고 수입 품목의 15%인 1,850개의 중국 의존도가 80%를 넘는다. 중국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중간재 품목은 지난해 604개로 13년 전보다 116개 늘었다. 우리가 세계 1위를 다투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에서도 주요 원자재 생산의 60~70%를 중국이 차지한다.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를 빌미로 중국이 원료 공급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리면 꼼짝없이 당하게 돼 있다.
우리 주력 산업들은 미중 어느 한쪽이라도 몽니를 부리면 심각한 피해를 당하는 ‘넛크래커 경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줄타기 경제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어설픈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나 ‘전략적 모호성’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미중 양국의 ‘볼모’가 될 수 있다.
샌드위치 처지에서 탈피하려면 미국 등과의 ‘가치 동맹’ 강화로 중심을 잡고 중국과의 투자·교역 비중을 최대한 빨리 줄여가야 한다. 우리 제품이 없으면 중국 등이 완제품을 만들지 못할 만큼 초격차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런 풍파 속에서 우리 주력 산업을 살리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노동 개혁과 세제·연구개발(R&D) 지원 등으로 기업 경영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