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급격히 오를 때마다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를 반영해 체감 물가와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항상 흐지부지되고 있다. 과거 집값이 급격히 올랐던 노무현 정권 말에도 같은 주장이 나왔으나 한국은행은 15년째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자가주거비를 물가에 반영하려면 관련 통계를 확보하고 우리나라 주거 환경에 맞는 추정 방식을 연구해야 하지만 한은과 통계청이 매번 등 떠밀리듯 마지못해 나섰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침묵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2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 2006년 10월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이 자가주거비를 포함한 소비자물가지수 편제와 이를 물가 안정 목표 대상 지표로 삼는 방안을 요구했다. 주거비는 주택 임차료와 자가주거비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는 임차료만 물가에 반영하고 있다. 자가주거비는 자신 소유 주택에 거주하면서 얻는 주거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말한다.
당시에도 집값이 급격히 오르자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자가주거비를 반영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고 한은은 2007년 1월 “자가주거비 포함 소비자물가지수 활용 가능성 여부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가주거비를 포함한 물가를 시범 편제하거나 어느 정도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결론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금통위나 국회 등에서 간헐적으로 자가주거비 미반영에 대한 지적이 나왔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물가 통계 편제 기관인 통계청도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했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집값이 급등하면서 금통위뿐 아니라 국회에서 자가주거비 반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자 한은은 예전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가주거비를 물가에 반영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측정 방법에 따라 물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고 통화정책 의도와 물가가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등 현실적 제약 요인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에 자가주거비 반영이 어려운 문제인 것은 맞지만 한은과 통계청이 모호한 태도로 시간만 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해당 사안을 검토했던 유럽중앙은행(ECB)은 같은 문제의식에도 체감 물가와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2026년부터 소비자물가지수(HICP)에 자가주거비를 반영하기로 했다. 자가주거비를 완벽하게 측정해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괴리를 줄이고자 하는 한은과 통계청의 정책적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자가주거비 반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확실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가주거비 물가 반영은 추정 방식이 가장 큰 문제”라며 “자산 가격 변동을 물가에 반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대출이자 등을 현실적으로 반영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