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이나 웨지의 페이스에 가로 방향으로 새겨진 홈을 가리키는 그루브(groove)는 골프 볼에 걸리는 스핀에 영향을 미친다. 클럽 페이스와 볼이 접촉하는 시간은 2,500분의 1초에 불과하다. 그 찰나의 순간 그루브는 물기나 이물질 등의 영향을 줄여 마찰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타이어의 홈과 비슷한 원리다.
이 1㎜도 채 되지 않는 그루브를 두고 법적 공방에 휘말리고 한쪽 눈의 시력까지 잃은 ‘클럽 제작의 천재’가 있었다. 은백색의 염소수염을 하고 있어 종종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로 오해를 받기도 했던 핑골프의 설립자 카르스텐 솔하임(1911~2000년) 이야기다.
어린 시절 구두 수선공에서 출발해 GE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골프 클럽 제작자로 변신한 솔하임은 ‘골프계의 에디슨’ ‘골프계의 혁명가’ 등으로 불렸다. 현재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골프 클럽 제작 기술의 상당 부분이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아이언 헤드 뒷면의 중앙 부분을 파내고 주변부에 잉여 무게를 배분하는 캐비티 방식이나 정밀주조법, 맞춤 클럽, 그리고 일자형 헤드의 가운데가 파인 앤서(ANSER)형 퍼터 등이 그렇다.
모든 사회 분야가 그렇듯 골프계에서도 진보론자와 보수론자의 대립은 언제나 존재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클럽 제조 업체가 진보 쪽이라면 전통을 지키려는 미국골프협회(USGA), 영국의 R&A 등은 보수 진영이다. 혁신가였던 솔하임은 그루브와 관련해 소송까지 벌였다.
분쟁의 단초는 아이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다는 핑 ‘아이(EYE)2’였다. 솔하임이 지난 1985년 내놓은 이 제품은 최초로 단면이 U자형인 그루브를 적용했다. U자형 그루브는 종전 V자형 그루브와 달리 페이스 표면이 마모되더라도 홈의 너비가 항상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루브는 ‘날카로운 가장자리를 가지면 안 된다’는 규정에 맞춰 모서리를 약간 둥글게 했는데 이로써 볼에 쉽게 흠집이 생기는 단점도 해결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핑 아이2 아이언을 분석한 USGA는 이 제품이 규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모서리의 곡면 부분을 포함하면 그루브 너비가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골프 룰에 규정된 그루브의 최대 폭은 0.9㎜(0.035인치)다. 솔하임은 그루브 너비는 그루브 내벽 사이 간격이기 때문에 규정에 적합하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USGA는 그루브의 곡면과 곡면 사이의 거리를 재는 ‘30도 측정법’을 도입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측정법에 따르면 핑 아이2 아이언은 부적합 클럽이었다.
핑은 결국 1989년 USGA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핑은 USGA에 제기한 소송에서 이겼다. 법원은 1993년 PGA 투어와의 소송에서도 핑의 손을 들어줬다. 솔하임은 약 4년간의 지루한 법정 공방에 대해 “밤낮없이 치른 싸움”이라고 했다. 그의 클럽 제작에 대한 열정도 사라져 분쟁 기간에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이 기간 동안 그는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시신경 손상으로 추정됐다.
핑 아이2 아이언은 솔하임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잠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USGA와 영국의 R&A가 스핀 제한을 위해 2010년 1월 스퀘어(ㄷ자형) 그루브 아이언과 웨지의 사용을 금지하자 필 미컬슨과 존 댈리 등 일부 선수들이 창고에 처박혀 있던 핑 아이2 아이언을 들고 나온 것이다. 핑 아이2 아이언은 법원 판결 덕에 새로운 그루브 규정에서 예외를 인정받으면서도 스핀 성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란이 가중되자 솔하임의 아들이자 현재 핑골프의 회장인 존 솔하임은 2010년 3월 페어플레이를 위해 핑 아이2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솔하임이 트레이드마크가 된 염소수염을 기른 것은 1971년부터다. 제품 홍보를 위한 100일간의 세계 여행 도중 인도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해 턱의 상처를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솔하임은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면도를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이 기회에 턱수염을 길러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