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름다운 추억 소환이 또 있을까.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20년간 이어온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추억을 끄집어내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마치 동창회를 연상케 하는 역대 스파이더맨과 빌런들의 만남은 반갑기 그지없다. 여기에 웃음과 감동, 볼거리까지 다 잡으며 ‘팬서비스’ 이상의 결과를 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은 빌런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가 스파이더맨을 악역으로 몰고 피터 파커(톰 홀랜드)의 얼굴을 세상에 공개한 뒤의 이야기다. 세상에는 스파이더맨을 추종하는 이도 있지만, 그를 악당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피터 파커는 자신 때문에 연인 MJ(젠데이아 콜먼)와 절친 네드(제이콥 배덜런)까지 피해를 입자,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아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없애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던 중 주문의 오류로 인해 멀티버스(다중 우주)가 열리고, 피커 파커를 알고 있는 다른 차원의 숙적들이 나타나 세상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는다.
‘노 웨이 홈’은 존 왓츠 감독 시리즈의 클락이맥스로, 마지막 홈 시리즈이다. 앞서 역대 빌런들 등장하는 것이 알려지고, 대본이 유출되면서 ‘삼스파’로 불리는 역대 스파이더맨들의 출연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기대했던 역대 스파이더맨들의 등장은 팬들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인 ‘샘스파’ 토비 맥과이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어스파’ 앤드류 가필드의 등장신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더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이라는 스파이더맨의 정체성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극장에서는 첫 번째 스파이더맨 등장에 반가움의 웃음이, 두 번째 스파이더맨 등장에는 웃음과 함께 박수까지 터져 나오기도.
역대 빌런들의 총출동도 남다른 의미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그린 고블린(윌렘 대포), 닥터 옥토퍼스(알프리드 몰리나), 샌드맨(토머스 헤이든 처치)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리저드(리스 이판), 일렉트로(제이미 폭스) 등은 배우 교체 없이 재등장했다. 서로 다른 차원에 있던 이들과 역대 스파이더맨들이 ‘노 웨이 홈’에서 재회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서로 안부를 묻는 것이 오랫동안 추억으로 간직했던 관객들에게 안부를 묻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빌런과 캐릭터들로 인해 산만할 수 있으나 그런 우려는 말끔히 씻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스파이더맨 슈트의 변천사도 볼 수 있고, 서로의 능력을 신기해하며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처음부터 합이 맞는 것도 아니다. “평소에 형제가 있었으면 했다”며 서로를 피터1, 2, 3로 부르며 의기투합하기 시작한다. 다른 차원,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스파이더맨들이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정신으로 빌런들과 맞서 싸운다. 두 스파이더맨이 ‘톰스파’(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의 조력자로만 활용되지 않는 것도 인상 깊다. 각 스파이더맨들마다 갖고 있는 애환들이 잘 버무러져 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즌2의 그웬 스테이시(엠마 스톤)의 추락신을 오마주한 MJ의 추락신, ‘톰스파’의 아픔을 공감하는 모습 등은 ‘스파이더맨’ 팬들의 추억을 소환시킨다.
‘노 웨이 홈’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첫 등장하며 스파이더 보이로 불렸던 ‘톰스파’. 빌런에게 “너의 약점은 도덕성”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고뇌하지만, 편한 방법보다 신념과 소신을 지키며 세상 구하려 한다.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주변인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언제나 그랬듯 영웅이 아닌 MJ와 네드도 사랑과 우정, 용기로 피터 파커를 조력하는 것도 인상 깊다.
다채로운 볼거리 덕분에 눈도 즐겁다. 시공간이 뒤틀리는 곳이 종종 등장하는데, 특히 갈등을 빚는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가 거울 차원에서 액션을 펼치는 장면을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랜드마크에서 빌런들과의 싸움은 하이라이트. 빌런들마다 갖고 있는 힘과 무기가 달라 다채롭고, 역동적인 액션으로 쾌감을 준다.
‘노 웨이 홈’은 MCU 페이즈4의 핵심인 멀티버스 세계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멀티버스로 인해 다른 차원에 있는 인물들이 합심하거나 적이 되면서 MCU는 더 거대해지고 다채로워졌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시즌2인 ‘닥터 스트레인지 인 더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는 본격적으로 멀티버스를 다룬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노 웨이 홈’의 쿠키 영상은 2개. 빨리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길 바란다. 12월 1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