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도 마음 놓고 여행을 다니기는 어렵게 됐다. 전국 해넘이·해돋이 명소에서 열리던 축제가 일제히 취소되고 재개될 뻔한 해외여행도 당분간 중단되는 분위기다. 다시 한 번 몰려드는 인파를 피해 안전한 곳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과제가 여행객들에게 주어졌다.
사계절 울창한 편백나무 숲길을 호젓하게 걸으며 한 해를 마무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올해 마지막 여행지로 전북 완주군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을 소개한다.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한 해 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겨울시즌 비대면 안심관광지’로도 포함됐다.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공기마을은 한오봉(해발 570m) 아래 작은 산촌 마을이다. 주변 산이 마을을 오목하게 둘러싸고 있는 생김새가 꼭 ‘밥공기’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편백나무 숲은 지난 1970년대 정부의 산림녹화사업을 기점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85만 9,500㎡에 달하는 땅에 심은 편백나무 10만 그루가 시간이 흘러 울창한 숲을 이뤘다.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던 숨겨진 공간이었다가 ‘최종병기 활’ 촬영지로 처음 이름이 알려졌다.
공기마을은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공덕교를 지나 죽림편백길을 따라 들어가면 만나볼 수 있다. 출발점은 편백숲관광안내센터다. ‘편백숲오솔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흙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편백나무 숲길로 접어든다. 오솔길은 편백나무 숲을 훑어볼 수 있도록 지그재그로 놓였다. 때로는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고 평지를 걷다 다시 내리막을 만나기도 한다.
오솔길은 4개 코스로 총 8㎞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주민들이 직접 만든 2㎞ 남짓 되는 오솔길이다. 편백숲관광안내센터에서 출발해 산림욕장을 지나 통문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 코스는 방대하게 퍼진 편백나무 숲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삼림욕에 최적화된 구간이다. 중간중간 만나는 평상과 벤치에서 쉬어가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걷는 내내 알싸한 피톤치드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반환점 인근에는 유황편백탕이 마련돼 있다. 유황 성분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만든 족욕탕이다. 온천은 아니지만 편백나무 숲에서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시며 냉수에 잠시 발을 담궈 보는 것도 겨울산행의 재밋거리다. 숲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공기마을은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꼽히는 창암 이삼만(1770~1847) 선생이 살던 곳이다. 평생 관직에 오르지 않고 서예를 연마한 창암 선생이 말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고택지를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