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말부터 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추가 인하되고 강화된 가계부채 규제를 적용받아 ‘이중고’를 겪게 된 카드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카드사 노조와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3년마다 카드사들의 손을 빌려 자영업자들의 불만을 달래주는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이 큰 혼란을 낳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드론으로 본업인 신용판매 적자 메꿔=23일 여당과 정부의 카드 수수료 개편안이 발표되자 카드 업계는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수수료 개편은 지난 2007년 이후 열네 번째 인하 조치다. 3년 전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시절에는 8,000억 원가량의 수수료 경감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부담은 고스란히 카드사의 몫이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카드 업계의 가맹점 수수료 부문 영업이익은 2013~2015년 5,000억 원에서 2016~2018년 245억 원으로 감소했고 2019~2020년에는 1,317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수수료율 추가 인하로 카드사의 손실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3년마다 이뤄지는 가맹점 수수료 적격성 심사에서 매번 수수료가 추가 인하된 만큼 올해도 예고된 수순이지만 카드 업계의 고사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내년부터 주요 수익원 역할을 했던 카드론마저 강화된 규제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그간 카드사들은 본업인 신용판매 적자분을 카드론 등 이자 수익으로 대체해왔다.
하지만 내년 1월부터 카드론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포함된다. 대출 총량 규제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예년만큼 활발한 영업을 펼쳐 높은 카드론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한 대형 카드사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 활황으로 고신용자들이 단기자금 용도로 카드론을 이용하면서 급격히 늘어나기는 했지만 카드론의 본래 취지는 급전이 필요한 중저신용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카드론이 제한적으로 이뤄지면 중저신용자의 대출 기회도 좁아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도 “강화된 대출 규제의 영향으로 카드론 등 기존 대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카드사가 새로 취급하는 카드론 규모는 작아지고 고객이 받는 카드론 문턱은 높아질 것”이라며 “카드사들은 해외 진출 등 새 수익원 찾기에 나설 수 밖에 없는데 코로나19로 해외 진출이나 영업이 당장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한번 구조 조정 바람 부나=위기감을 느낀 카드 업계는 내년 수익성 악화에 대비해 이미 ‘몸집 줄이기’에 돌입했다. 대형 카드사 중에서는 KB국민카드가 가장 먼저 지난달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짐을 싼 직원은 10여 명으로 많지 않지만 신청 가능 연령대가 차과장급인 1981년생, 만 40세까지 내려갔다. 신청자 중 1981년생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신청 문턱이 낮아진 것은 그만큼 카드사가 적극적으로 조직 재정비에 나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롯데카드도 금융 당국의 카드론 규제 강화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추가 인하 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로 올해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날부터 근속 10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오는 28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지난해와 같은 조건으로 근속 기간에 따라 32개월에서 최대 48개월의 기본급과 최대 2,000만 원의 학자금을 지급한다. 롯데카드는 희망퇴직 단행 배경에 대해 “내년에 악화가 예상되는 시장 환경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카드는 희망퇴직 문제와 관련해 현재 노조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BC·신한·현대·하나카드는 연내 희망퇴직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당장 카드사 스스로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구조 조정을 통한 인력 조정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이미 올해 말 일부 카드사들이 희망퇴직을 발 빠르게 실시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카드사는 은행이나 다른 금융사 보다 희망퇴직 신청 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40대의 젊은 직원도 많아 내년 초 희망퇴직이 실시되면 신청 인원은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빅테크 수수료에는 ‘실태 점검’ 되풀이만=금융 당국은 수수료 개편 방안과 별도로 카드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당근책을 제시했지만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의 간편결제 가맹점 수수료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앞서 카드 업계는 ‘동일 행위 동일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당국이 카드 가맹점 수수료와 마찬가지로 빅테크의 플랫폼 수수료율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간편결제와 신용카드는 수수료 구성, 제공되는 서비스 유형과 경쟁 환경이 달라 직접 비교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면서 “금감원에서 간편결제 수수료 구조와 수수료율 현황 등을 점검 중이므로 실태 점검 결과를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아울러 카드 업계는 ‘차기 가맹점 수수료 재산정 주기 조정’ 등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국이 수수료 재산정 주기 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드노조협의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적격 비용 재산정 제도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한 카드 노동자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의 입장을 표명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