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중고차 개방 '3년째 공회전'…결국 기업이 나섰다[뒷북비즈]

■완성차, 내달 중고차시장 진출

인증 통해 품질보장·AS 향상

AR 등 활용 신사업 기회 모색

수입차브랜드와 역차별도 해소

동반위 '부적합' 의견 내는 등

생계형 업종 지정 가능성 희박

"시장 진입 반대할 명분 없을 것"





완성차 업계가 내년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소비자들은 현대차와 기아 등 완성차 업체의 인증을 받은 중고차를 구매할 수 있으며 신차 구매를 위해 기존 중고차를 완성차 업체에 팔 수 있게 된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전날 ‘우리 제조업의 위기와 대응 과제’를 주제로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산업발전포럼에서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정 회장은 인사말에서 “국내 완성차 업계는 내년 1월부터 사업자 등록과 물리적 공간 확보 등 중고차 사업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며 중고차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고차 시장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해제 이후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에는 법적 제한이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이 중소벤처기업부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건의한 점을 고려해 지난 3년간 시장 진입을 자제했고 중고차 매매상들과 상생 협력 방안을 찾았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완성차 업계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고려해 더 이상 중고차 시장 진출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다만 중기부가 이제라도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어 시장 개방 여부를 결정하면 이에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 진출 강행을 선언한 것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는 수입차 브랜드와의 역차별 △매년 성장하는 중고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 △허위 매물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등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중고차 매매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 시장’으로 분류된다. 중고차 매매업자는 중고차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반면 소비자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 정상적인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못하고 허위 매물, 주행거리 조작 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중고차 시장을 믿지 못하고 양질의 중고차가 시장에서 사라져 시장 규모 자체가 축소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해왔다.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은 이런 폐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이 개방되면 완성차 업체들은 중고차와 관련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신차 가격을 방어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완성차가 보증한 중고차를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완성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0%는 ‘현 중고차 시장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63%는 완성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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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시장의 신뢰도를 낮게 생각하는 이유로 소비자들은 ‘가격 산정 불신(31.3%)’ ‘허위·미끼 매물(31.1%)’ ‘주행거리 조작, 사고 이력 조작 등에 따른 피해(25.3%)’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불안(6.2%)’ 등을 꼽았다.

완성차 업체가 인증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인증을 통해 중고차의 품질을 신뢰할 수 있고 일정 기간 품질보증을 받는 등 애프터서비스도 향상된다. 기존 차량을 팔고 신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다. 완성차 대리점을 방문해 기존 차량 판매와 신차 구매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존 차량을 중고차 매매업자에게 판 뒤 다시 완성차 대리점에서 신차를 구매하는 불편이 있었다. 현재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는 수입차 브랜드와의 역차별도 해소된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품귀로 신차 출시가 지연되면서 중고차 매매 건수가 늘고 가격도 급등하는 등 중고차 시장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해외 선진국은 중고차 매매 시장에 대한 완성차의 진입 규제가 없다. 오히려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소비자 권익을 보호한다. 신차의 두 배가 넘는 규모의 중고차 시장이 형성돼 있는 미국은 수요에 따라 매물을 택할 수 있도록 시장이 세분화돼 있다. 대기업이 이끄는 고품질 중고차 시장과 중소 독립 딜러 중심의 저품질 시장이 구분된다. 불확실성이 높은 중고차 구매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신뢰도가 중요해졌고 자본력을 바탕으로 켈리블루북·트루카 등 가격 정보 업체와 차량 이력 정보 제공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차량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감정이 가능한 대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정부 역시 시장 개입을 줄여 민간 주도의 중고차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주요 완성차 브랜드들이 신차와 마찬가지로 중고차 직영 매장을 운영하며 인증 중고차와 중고차 경매 등에 나서고 있다. 독일·영국 등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자동차 판매점에서 신차와 중고차를 함께 판다.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 상태와 이력·주행거리 등을 검사해 일정 기간 보증하는 방식으로 인증 중고차 제도를 운영한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이지만 신뢰도가 높아 소비자들이 선호한다. 업계에서는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계기로 다양한 산업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의 경우 빅데이터,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한 부가가치 높은 사업 모델들이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들의 요구에도 중고차 시장 개방 결정을 미뤄온 중소벤처기업부는 당혹감에 빠졌다. 권칠승 중기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올해 안에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어 중고차 매매업의 개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중기부는 아직까지 회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박영선 장관에 이어 권 장관도 대선을 앞두고 매매업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심의위원회를 열더라도 중고차 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부적합’ 하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매매업은 지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시장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며 “이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도 손을 놓은 채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방치한 만큼 완성차의 시장 진입을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김지희 기자·이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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