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스피지수가 지난 1월 역사적인 ‘3,000 돌파’ 축포를 쏘아 올렸다. 이후 6월에는 3,300선마저 뚫으며 힘찬 랠리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힘을 잃으면서 연말에는 결국 3,000선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올해 상승 폭을 대부분 반납한 셈이다. 내년에는 어떨까. 국내 자본시장 전문가 100인은 내년 코스피지수의 등락 범위를 2,800~3,400으로 예상하며 ‘변동성 큰 박스피’ 장세를 전망했다. 미국 금리 인상 기조와 인플레이션, 코로나19 변이 확산 등 대내외 변수가 주가 상승세를 제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국내외 증권사들이 앞다퉈 내놓았던 ‘코스피 3,700선 돌파’ 전망과 격차가 크다. 다만 기업 이익을 짓누르던 글로벌 공급난이 내년부터 해소되고 글로벌 경기가 개선되면서 주가가 반등하는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변동성이 커진 만큼 투자 난도도 올라가는 점을 고려해 간접투자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년에도 박스피 꼬리표 못 떼나=27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주요 5개 증권사는 내년 코스피 예상 등락 범위 하단으로 2,800을, 상단으로 3,400∼3,600을 각각 제시했다. 이는 최근 서울경제가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증권사 PB 등 100명에게 설문한 내년 코스피 예상 등락 범위와도 일치한다. 전문가들은 하단으로 2,800을, 상단으로 3,400을 제시했다. 올해 코스피 저점(2,822.73)과 고점(3,316.08)을 고려하면 내년 증시가 올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다. 27일 코스피지수는 연초(2,944.45)보다 1.87% 오른 2,999.55에 거래를 마쳤다.
세부적으로 지수 상단의 경우 3,400선을 써낸 응답자가 27%로 가장 많았고 3,300선이 21%로 뒤를 이었다. 다만 3,500선을 내다본 응답자도 20%로, 지수가 박스피를 탈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지수 하단은 2,700~2,800선을 내다본 응답자가 64%에 달했다.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3,000선을 밑돌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예상은 지난해 이맘때 대부분 증권사가 올해 코스피 전망치를 2,750~3,300 범위로 제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올해 코스피가 예상과 달리 부진한 성적을 보이자 내년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든 탓이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코스피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수차례 돌파하는 등 상승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세계적인 유동성 축소 우려로 신흥국 증시가 약세를 띤 데다 주력 수출 업종인 반도체 업황의 둔화, 인플레이션 등의 악재가 잇따르며 약세를 보였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코스피의 올해 상승률은 4.8%대로 세계 주요 증시 평균(15%)을 크게 밑돌았다. 현시점에서 증시 전문가들이 내년 증시에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것은 거시적인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세호 한국투자증권 GWM 팀장은 “내년에는 경기 기대감보다는 ‘기고 효과’가 크게 나올 수 있는 구간으로 보고 있다”면서 “올해 단계적 일상 회복이 계속 지연됐듯이 내년에도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실망감이 커지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에 반등 가능성”…ETF 등 투자 유망=전문가들은 내년 하반기가 되면 코스피가 반등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응답자의 48%가 이같이 내다봤다.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자산 시장을 흔들 핵심 변수이기는 하지만 하반기로 접어들며 압력이 약해져 투자자들의 위험 자산 선호 심리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이종훈 삼성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은 “글로벌 공급난 등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이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을 압박할 것으로 보이며 미국 금리는 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다만 금리 인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이 이를 선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광희 KB증권 WM스타자문단 삼성동금융센터 부지점장은 “내년 상반기 세 번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충격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인상을 추진한다는 것은 경기가 그만큼 양호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 주도주인 ‘전·차(전자와 자동차)’ 업종 반등도 하반기 주식시장을 이끌 주요 변수로 꼽힌다. 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최근 외국인의 연이은 순매수에 힘입어 ‘8만 전자’를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으로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강구현 미래에셋증권 도곡WM PB는 “최근 마이크론 호실적 발표와 목표 주가 상향의 온기가 대한민국 반도체·자동차 산업에 퍼지고 있다”면서 “자동차 산업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이슈의 피크아웃 기대감에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주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동성 확대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 추가 변이나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등장해 투자의 벽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리스크 회피’를 위해 간접투자 비중을 넓힐 것을 조언했다. 강 PB는 “올 상반기까지는 투자하기 정말 쉬웠던 강세장이었지만 내년은 다르다”며 “시장의 강세와 약세를 떠나 금리 인상 등의 이슈로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KRX금 등 안전 자산에 대한 포지션을 일부 가져가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 부부장은 “주식에 자신이 없을수록 상장지수펀드(ETF) 비중을 늘리는 것을 권한다”며 “ETF는 전문가들이 좋은 종목을 여러 개 묶어 알아서 운용해주기 때문에 개별 종목을 잘 모르는 사람도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지난해 개별 주식 투자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이 올해 펀드 시장으로 대거 몰리면서 ETF 시장도 1년 만에 순유입세로 전환됐다. 직접투자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떨어지면서 일반 주식형 펀드로 향하는 자금 규모도 지난해보다 커졌다. 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의 경우 하반기에만 9,600억 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연간 기준으로는 올 초 기관들이 자산 배분 조정 영향에 총 2조 9,619억 원이 빠져나가 3년 연속 순유출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6조 9,000억 원이 빠져나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입 규모가 이전보다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