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두 달여 앞둔 31일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대선 최다 득표율(51.55%)이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탄핵 이후인 현재는 가장 인기 없는 전현직 대통령이다. 서울경제·한국선거학회 의뢰로 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달 16~18일 만 18세 이상 남녀 1,800명에게 ‘주요 정치인 호감도’를 물은 결과 박 전 대통령은 28점(100점 만점)으로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 가장 낮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감각은 대선판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사면·복권과 동시에 서간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를 출간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서간집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박 전 대통령의 움직임을 정치권이 숨죽여 지켜보는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은 내년 2월 2일 이후 퇴원하면서 첫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채널A 인터뷰에서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대통령이 육성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野 탄핵 청구서 받나=우선 박 전 대통령이 탄핵과 재판으로 탄압받았다는 메시지를 낼지 주목된다. 박 전 대통령은 서간집에서 “형식적으로 합법적인 모습을 가지더라도 실질적으로 정당성이 없다면 이를 법치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며 불복을 시사했다.
이는 친박 세력이 국민의힘 주류 세력과 맞서는 형국으로 비화할 수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해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에 대해 사과했으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당 대표 경선 연설에서 “탄핵은 정당했다”고 주장한 전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주도한 특정 인물을 찍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서간집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측근으로 꼽히는 권성동·장제원 의원과 관련해 “거짓말로 속이고 선동한 자들은 누구라도 언젠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복당을 신청하는 경우 당내 정면 충돌도 예상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박 전 대통령 사면으로 국민의힘 내에서 ‘탄핵의 강’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며 “윤석열과 이준석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며 부분적 동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보수표 이탈할까=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에 대해 부정적 메시지를 내놓으면 보수 지지세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윤 후보가 정권 교체를 위한 중도 확장에 방점을 찍은 가운데 보수 ‘집토끼’ 홀대론을 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후보는 그동안 보수 정당 후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더구나 지난 23일 전남선대위 출범식에서 “민주당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고 말해 당원들 사이에서 반감이 커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타 공인 ‘보수 적자’인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면 보수표가 대거 빠질 수 있다. 그는 서간집에서 집토끼를 언급하며 “내가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두 밖으로 나가버릴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특히 1990년생 페미니스트 신지예 씨 영입 등으로 윤 후보에 대한 2030 지지세가 약화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었던 대구·경북까지 이탈하면 지지율 하방 경직성도 깨질 수 있다. 이 경우 후보 교체론이 급부상할 수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박 전 대통령이 ‘보수 후보가 없다’고 말하면 보수 지지세가 망가질 수 있다”고 했다.
◇탄핵 vs 반탄핵 구도 형성되나=박 전 대통령이 활동 반경을 넓히면 탄핵과 반탄핵의 구도가 형성돼 촛불 민심이 더불어민주당에 결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거나 국민의힘과 화합하는 행보를 보이면 연인원 1,600만 명을 돌파했던 촛불 민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은 41.08%를 모두 흡수하지 못한 상황이라 민주당으로서는 보수 분열 없이도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배 소장은 “박 전 대통령의 활동으로 ‘이재명 후보가 나을 수 있다’ ‘문재인 정권 연장이 나을 수 있다’는 정치적 여론이 환기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력을 고려하면 촛불 민심, 중도층을 자극하는 행보는 자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박 전 대통령은 본인이 메시지를 내는 것이 대선 필패 카드라는 것을 알 것”이라며 “윤 후보가 불리한 상황에서 그런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