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화랑협회vs경매회사…상생을 위한 선전포고

한국화랑협회, 경매사 무분별한 운영 제동

"과다한 경매횟수, 작가 직거래 안 돼"

26일 회원화랑 옥션 개최 "바른 경매 추구"

미술품 경매 현장. 본 기사내용과는 무관함. /서울경제DB미술품 경매 현장. 본 기사내용과는 무관함. /서울경제DB




“옥션사들의 무분별한 운영으로 시장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vs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자”



미술품 거래의 주체인 화랑과 경매회사가 연초부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국내 최대규모 화랑 연합체인 한국화랑협회(이하 화랑협회)가 오는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 그랜드 볼룸에서 ‘회원화랑 옥션’을 개최한다. 수익추구 목적의 경매라기보다는 옥션사들의 “무분별한 운영”에 제동을 걸고자 화랑협회가 택한 일종의 단체행동이다.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3일 성명서를 통해 “과도한 옥션의 개최 횟수를 줄이며, 작가들에게 직접 경매 출품 및 판매 의뢰를 해서는 안 된다. 작가 발굴, 전시 및 페어를 통한 프로모션 등 1차 시장인 화랑의 고유 영역을 옥션사들이 침해하는 행위 및 문제를 야기하는 일체 행위의 금지를 강하게 촉구한다”면서 “미술계의 상생을 위한 운영방식을 제시하기 위해 회원화랑 옥션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경매회사, 뭐가 문제인가?


화랑협회 측은 “어떤 옥션사는 연간 80회에 달하는 경매를 진행하고, 제작된 지 얼마 안 된 작품들이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1차시장(화랑)을 거치지 않고 바로 2차시장에 진입하게 한다”면서 “사실상 작가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화랑의 역할이 축소되고, 1차 시장과 2차 시장 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998년 서울옥션, 2005년 케이옥션이 등장한 후 한국미술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옥션사는 정기적이고 활발한 경매와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미술품 유통시장의 규모를 키워놓는 데 기여했다. 다만 그 횟수가 ‘과다’한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한 경매 전문가는 “글로벌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도 메이저경매는 1년에 2회, 봄·가을에만 개최한다”면서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은 바람직하나, 짧은 주기로 과다한 양의 작품을 경매에 올리는 것은 시장을 소비(consume)해 버리는 근시안적 태도”라고 짚었다. 또다른 경매 전문가는 “시장 수요가 많다고 해서 한 경매에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10여 점씩 출품하고, 김창열의 ‘물방울’이 인기라고 한 경매에 무더기 출품하는 식으로 물량 과다 공급이 이뤄지면 가격 급변과 시장 후퇴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아트비즈니스를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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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회사와 작가간 ‘직거래’도 바람직하지 않다. 활황 시장에서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림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것은 결코 긍정적 신호가 아니다. 화랑을 통한 안정적 가격형성이 없는 채 공급량이 과다할 경우 가격 급락이 우려되고, 실제 지난 2007년 미술시장 호황 이후 다수 작가의 ‘급락세’가 벌어졌다.

당시 화랑협회와 옥션사들은 △메이저경매는 연 4회로 제한한다 △옥션사가 구입하는 국내 작가 작품은 경매에 올리지 않는다 △제작연도가 2~3년 이상인 작품만 출품한다 등의 ‘미술계 상생을 위한 신사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협약은 한동안 지켜지다 현재는 유명무실해졌다. 화랑협회 측은 성명서에서 “지난 2007년의 협약을 준수할 것”을 강조했다.

미술품 경매 현장. 이 사진은 본 기사와는 상관없음. /서울경제DB미술품 경매 현장. 이 사진은 본 기사와는 상관없음. /서울경제DB


■화랑만 참가하는 경매라니?


화랑협회는 150여개 회원화랑 만이 참가하고 응찰할 수 있는 ‘회원화랑 옥션’을 준비했다. 오는 24~26일 프리뷰 전시는 회원화랑의 초대를 받은 경우에만 관람할 수 있다. 과거 미술품 경매가 등장하던 초창기에, 화랑들이 필요한 작품을 수급하기 위해 개최한 ‘딜러경매’가 활발했기에 ‘전례없는 일’은 아니다. 이번 경매도, 개인이 화랑을 통해 원하는 출품작을 구입하는 것은 가능하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2007년 미술시장과 지금의 시장환경이 달라진 것은 감안할 수 있지만, 옥션사가 작가에게 직접 연락해 ‘수수료 50%의 화랑보다 옥션레코드도 남길 수 있는 경매로 거래하는 게 낫다’면서 부추기는 일은 화랑업의 존페여부와 직결되는 일”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상생할 수 있는 미술시장 확립이며 그 실현을 위한 ‘바른 경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최근 발표한 2021년 미술시장 전체 규모는 9,157억원이며 이 중 경매시장 규모는 3,242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아트페어 매출은 1,543억, 화랑매출은 4,372억원으로 추산됐다. 공통적으로 2020년보다 2.5배 이상 성장했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성장세가 뚜렷하다. 화랑협회의 이번 성명서에 대해 양대 옥션사는 4일 현재 뚜렷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서울옥션의 한 관계자는 “화랑의 제언을 존중해 경매 횟수 조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화랑과 경매사가 ‘땅따먹기식’으로 경쟁할 게 아니라 시장 전체의 확장을 도모하는 긍정적 역할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팬데믹 상황에서 해외 화랑들은 다양한 변화와 혁신으로 소더비·크리스티와 경쟁하면서 1차시장을 키워왔다. 국내 화랑의 환골탈태가 요구된다”면서 “세계 미술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지금 자중지란을 보여주는 것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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