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윤석열, 백지 앞에서 '다른 모습' 세 번 약속…金 없는 '새출발' 결말은

■윤석열 '선대위 해산' 발표 현장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 및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권욱 기자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 및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권욱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5일 오전 11시1분께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3층에 나타났다. 선거대책위원회 해산이라는 중대 발표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을 겪는 가운데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도 결별한다는 의미여서 세간의 시선이 집중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윤 후보의 손에는 A4용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당사에 빼곡히 들어찬 기자들과 당 관계자들이 사이로 천천히 걸어서 단상으로 이동했다. 사람들 수백명이 있었으나 웅성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단상에는 ‘살리는힘 윤석열’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배경 현수막은 ‘백지(白紙)’였다.

윤 후보는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 입을 살짝 다문 담담한 표정이었다. 곧바로 준비한 A4 용지를 읽어 내려갔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나온 첫마디였다. 차분한 어조였다. 윤 후보는 930자 분량 발표문을 4분여간 읽었다. 발표문에는 '다른 모습'이라는 단어가 세 차례나 나왔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모습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확실하게 다른 모습으로 국민들께 변화된 윤석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른 모습'이란 어떤 모습일까. 윤 후보는 발표문에서 “국민이 기대하셨던 처음 윤석열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결국 혈혈단신으로 정권에 맞서던 검찰총장 시절의 단호하고 굳건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 및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권욱 기자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 및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권욱 기자


윤 후보는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발표를 마친 뒤 단상 왼쪽으로 나와 허리를 숙이고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단상에 자리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질의응답은 30분간 진행됐다. 윤 후보는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어조에도 크게 변화가 없었다. 다만 정적이 6초간 흐른 때도 있었다. ‘김종인 위원장이 오늘 후보가 비전 없다고 말했고, 이준석 대표도 후보가 선거 임하는 대전략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뒤였다.



윤 후보는 “비전에 대해서는 앞으로 또 좋은 말씀과 제언을 해주시지 않겠나 생각을 하구요”라고 한 뒤 말을 멈췄다. ‘대전략이 부족하다’는 이 대표의 지적에 관련한 대답은 하지 않은 것이다. 윤 후보의 추가 대답을 기다리는 기자들과 기자들의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윤 후보의 생각이 엇갈리면서 정적을 자아냈다.

관련기사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22번째 질문이 나온 뒤 “30분이 다 되간다. 질문을 세 개만 더 받겠다”고 말했다. 이후 이 수석대변인이 25번째 질문을 받고 끝내려 하자 윤 후보는 “하나만 더”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 질문이 또 다시 나왔다. ‘윤 후보의 슬림한 선대본부와 김종인의 선대위 개편안이 다른 점 없는 거 같은데 김종인과 함께 가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본부체제로 가는 게 더 슬림하고 의사결정 발빠르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 및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권욱 기자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 및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권욱 기자


윤 후보는 총 26개의 질문을 받았다. 이중 김 위원장과 이 대표 관련 질문이 각각 4개,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관련 질문이 2개였다. 윤 후보는 다시 단상 왼쪽으로 나와 허리를 숙이고 인사했다. 그는 단상으로 돌아가 마스크를 썼다. 그는 마스크를 귀에서 한 차례 미끄러뜨렸다. 윤 후보는 마스크를 고쳐 쓴 뒤 “기자님들 수고 많으셨어요”라며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나가는 길에 복도에 자리한 기자들 열댓명과 천천히 악수를 나눴다.

윤 후보는 자신에게 모여든 수백명의 인사들을 뒤로 하고 홀로 광야에 나선 모양이다. 선대위 ‘원톱’ 김 위원장과는 33일만에 갈라섰다. 매머드 선대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생각은 김 위원장과 같았으나 김 위원장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윤 후보는 자기 자신을 ‘원톱’으로 세웠다. 윤 후보는 총괄선대위원장·상임선대위원장·공동선대위원장 등 위원장단과 수 명의 총괄본부장 등 지도부가 없는 체제로 선거 운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도부급 인사는 선대본부장과 정책본부장 두 명이 전부다. 선대본부장은 4선 권영세 의원이 맡는다. 그는 윤 후보와 대학 시절 형사법학회를 같이 한 사이다. 정책본부장에는 임태희·원희룡 전 총괄본부장이 거론된다.

윤 후보는 지난 3일 오전 10시 이후 전면 중단했던 일정을 오후 2시 중소기업중앙회 신년인사회로 재개했다. 윤 후보는 해당 일정을 위해 당사를 나가면서 ‘소감을 말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완전히 새출발”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자신이 삼고초려해 영입한 김 위원장 없이도 선거 운동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선대위를 뛰쳐나간 이 대표와도 화해 무드를 거쳐 협조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윤 후보의 결정을 지지하는 한 측근은 “그야말로 초심을 돌아봤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 길이 윤석열을 살리고 제1야당을 살리는,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라고 보고 선택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선대위 해체 선언에 감동은 없었다. 당 관계자들의 표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웠다. 윤 후보도 확신에 찬 어투는 아니었다. 다만 홀가분한 표정이 엿보였다. 홀로 시작한 그가 다시금 홀로 섰다. 이번 새출발의 결과는 윤 후보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까지 바꿀 전망이다.


조권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