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연료비 폭등으로 촉발된 카자흐스탄의 반(反)정부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현지 정부는 시위 배후에 ‘외부 테러리스트’가 있다고 규정했지만 상황을 관리해야 할 내각이 총사퇴하는 등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러시아가 주도하는 안보협의체(CSTO)는 5일(현지 시간) 군 병력을 카자흐스탄에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문제 등으로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 대치하는 상황에 러시아가 옛 소련권에서 발생한 ‘내부 분란’을 서둘러 진압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CSTO 의장인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이날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요청으로 CSTO 소속 평화유지군이 현지로 파견될 것”이라며 “외부의 간섭으로 카자흐스탄의 안보·주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병력 규모와 파견 시점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CSTO는 지난 2002년 옛 소련권인 러시아·벨라루스·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이 결성한 군사·안보협력체로 ‘러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로도 불린다. 6개국이 참여하고 있지만 사실상 러시아 군대로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CSTO가 서둘러 파병을 결정할 만큼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사태를 중대한 ‘역내 안보 위협’이라고 보고 있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피터 슈피겔 미국 담당 편집장은 “나토와 결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영향권에 있는 국가의 ‘민중 봉기’는 러시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2일 카스피해 연안 유전 지대인 망기스타우주(州)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 주요 도시로 번졌고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시내 대통령 관저와 알마티 시 청사를 점거할 정도로 과격해졌다. 시위대는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채 경찰·군과 맞섰으며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군 포함1,000여명이 부상했고, 수십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가 알마티 공항을 장악해 이날 인천에서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탑승객 70여 명도 공항에서 발이 묶인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심각한 빈부 격차에 따른 박탈감이 시위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카자흐스탄의 연간 물가 상승률은 최고 9%에 이를 정도로 인플레이션 역시 심각하다. 이 와중에 대표적 서민 연료인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이 그간 누적돼온 불만을 폭발시켰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올해부터 가격상한제를 폐지한 LPG 가격은 ℓ당 50텡게(약 137원 50전)에서 순식간에 120텡게로 치솟았다.
전날 이동 제한 조치 등을 포함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는 외국에서 교육받은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CSTO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전날 카자흐스탄 내각은 시위 확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자원 대국’ 카자흐스탄의 대혼란에 글로벌 시장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생산 비중이 40%(지난해 기준)로 1위 우라늄 공급국인 카자흐스탄의 소요 사태로 이날 우라늄 가격은 3.25달러 올라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다. 또 카자흐스탄은 미국(35%)에 이어 비트코인 2위 채굴 국가다. 사태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