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도망가면 당 대표를 사퇴하겠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6일 극한 대립 끝에 극적으로 화해했습니다. 지난달 3일 울산회동에 이어 두번째 갈등 봉합에 성공한 셈인데요. 지난 연말 부터 연초까지 국민의힘의 내홍은 점입가경이었습니다.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하고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손을 맞잡았지만 긴장감은 여전합니다.
최근 흐름만 보면 지난 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선대위 해산 결정으로 김종인 전 총괄선대본부장은 위촉 33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하루만에 김종인 전 위원장은 “총괄선대위원장이라고 명칭만 해놓고 당의 인사나 이런 게 전혀 나한테 전달이 안됐다”며 윤 후보를 직격했습니다. 6일 하루동안 이준석 대표는 종일 윤 후보와 소속 의원들과 충돌을 빚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당 대표 사퇴 요구안을 촉구하는가 하면 이 대표는 신뢰관계를 측정할 ‘연습문제’를 제안했으나 윤 후보 측이 거부했다며 불쾌감을 나타냈습니다.
말그대로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역시 ‘정치는 생물’입니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언제그랬냐는 듯 얼싸안고 포옹 했습니다. 어느날 또 김 전 위원장이 ‘별의 순간’을 얘기하며 윤 후보와 손을 잡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갈등이 잠복해 있다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데는 윤석열·김종인·이준석 세인물이 가진 특성 탓이 큽이다. 자기선거의 승리 경험 없이 자기 확신에 가득찬 인물. 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개운치 않습니다.
황소같은 권력수사로 길들여진 ‘자기확신’-①윤석열
윤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직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습니다. 선출직에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이니 당연히 승리의 경험이 있을리 없습니다. 다만 검사로서 권력자를 구속한 경험이 자기 확신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03년 참여정부 실세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구속했을 뿐 아니라 2006년 당시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속영장 청구를 고심하는 정상명 검찰총장에게 “법대로 해야 한다”며 사직서를 제출해 정 회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될 수 있도록 압박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08년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사건'을 수사한 정호영 특검에 합류했고, 2016년 12월1일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수사하는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임명 된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습니다. 이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하는 데도 공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현 정부 검찰총장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도 칼을 들이댔다가 정권과는 결별수순을 밟고 그 덕분에 국민 지지를 받아 대선후보까지 직행할 수 있었습니다.
TK(대구.경북) 지역구의 국민의힘 한 의원은 “윤 후보가 겉으론 털털하고 소탈하지만, 사실 황소같은 면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판단을 굳히면 그대로 밀고 가는 스타일” “타협과는 거리가 먼 지도자형” 지척에서 윤 후보를 바라본 당내 인사들의 표현은 비슷합니다. 권력자를 구속시킬 강단과 고집은 자기 확신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밀어붙이는 검찰 수사식의 리더십이 타협과 협상, 양보와 합의가 필요한 정치권의 생리와는 거리가 있는 셈입니다.
비례대표만 5번…선거구원전문투수의 ‘자기확신’-②김종인
김종인 전 위원장은 자타공인 여의도 정치문법의 대가입니다. 선거판세를 누구보다 잘 읽고 권력의 향배를 빠르게 읽다보니 지역구 한번를 거치지 않고 비례대표로만 5선을 했습니다. 11, 12대 민정당 전국구 의원, 14대 민자당 전국구 의원, 17대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의원, 20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눈치채셨나요. 집권여당이나 당시 총선에 승리가 보장된 정당에서 비례의원을 달았던 것입니다.
20대에선 셀프공천으로 비례 2번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선거판의 흐름을 읽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보니 큰 선거때마다 부름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3김시대가 끝나고 정치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을 꼽자면 역시 김 전 위원장이 1순위입니다.
명실상부 정치문법의 대가 지위에 오른 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경선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입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겨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선거 구원 전문 투수’의 존재감은 지난해 국민의힘으로 옮겨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승리로 재차 확인됐습니다. 선거 구원전문투수의 존재감은 자기확신을 더욱 키웠고 매번 “나에게 전권을 달라”는 식의 요구로 나타났습니다. 19대 국회에서 김 전 위원장을 지켜봤던 홍종학 전 의원은 6일 페이스북에 “김종인은 민주주의 파괴자”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종인은 끊임없이 전제적 권한을 요구하고, 그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떠나게 되는데, 그 사이 정당내 분열 양상은 증폭된다”고 쏘아붙였습니다.즉 전권을 갖고 선거에 승리할 때마다 전권을 행사한 자기 확신에 믿음을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다만 김종인 리더십의 빈공간은 분열이 늘 따랐습니다. 역시 타협과 협상, 양보와 합의가 필요한 민주적 정당과는 거리가 있는 정객입니다.
헌정사상 첫 30대 제1야당 대표의 ‘자기확신’-③이준석
이준석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수재입니다.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정치권에 입문해 스물여섯의 나이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임명됐습니다. 그 이후 10년만에 제1야당 대표가 됐습니다. 헌정사항 처음으로 30대 당대표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습니다. 그는 3김 이후 처음으로 고정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으로도 꼽힙니다. 3김이 지역을 할거했다면 이 대표는 2030세대를 확실히 고정지지층으로 확보했습니다.
이 대표가 2019년 펴낸 ‘공정한 경쟁: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묻다’의 여는 글은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2018년 11월에 이수역 사건을 발단으로 거대한 젠더 갈등이 터졌고, 그를 기점으로 지금까지의 보수-진보 구조 사이에서 형성된 정치적 운동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운동장이 마련됐다. 2019년 2월에 있었던 여성할당제에 대한 ‘100분 토론’을 기점으로 나는 의외의 영역에서 젊은 세대에서의 대중적인 인기의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이 대표는 이미 4년여 전에 정치적 ‘균열’을 야기하는 사건에 주목했고, 이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길을 눈치챈 겁니다. 당시 그 자신도 이를 두고 ‘의외의 영역’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성정치인들이 우르르 몰려가 피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할 때 그는 이로부터 소외되는 20대 남자(이대남)들에 주목한 겁니다. 한 순간 지나가는 말로 ‘이대남’을 대변했다면 당대표까지는 오르지는 못했을 겁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치평론가로서 입지를 다지며 선거공학적 판단에서 누구보다 빠른 판단과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30대 당대표가 소속 당 대선후보에게 ‘연습문제’를 낼 수 있는 건 이런 자기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자기 선거 점수는 낙제점입니다. 서울 노원병에서 20대 총선 낙선, 2018년 보궐선거 낙선, 21대 총선서도 역시 낙선했습니다.
결별로 끝난 ‘3인의 33일’ 동거…‘윤석열+이준석’ 60일 결과는
자기 선거의 승리의 경험없이 독특한 자기확신을 갖고 대선에 뭉친 3인의 33일은 결국 결별로 마무리 됐습니다. 그나마 윤 후보와 이 대표가 극적 봉합을 이뤘습니다. 윤 후보 입장에선 전권을 달라는 노회한 김종인 전 위원장보다는 30대 당대표에게 자기확신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대표도 이번 대선에 승패에 따라 자신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계산에 그간의 책임방기를 사과하고 두 사람은 남은 60일간 대선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6일 의원총회는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았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당 대표에게 ‘사이코패스·양아치’라고 서슴없이 비판하는 의원들 사이에서 자기확신이 강한 이 대표는 얼마나 견딜수 있을까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 국면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원,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종로 등의 보궐선거 공천. 대선을 흔들 이슈는 아직도 많습니다. 남은 60일 누군가 자기확신을 양보하지 않는다면 파국은 재연될 수 있습니다. 각자가 가진 자기확신이 자기선거에 승리한번 없었던 허상이라는 사실에 겸허해지길 바랍니다. 지쳐가는 건 국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