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으로 기소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 측이 ‘화천대유에 유리한 공모 지침서로 대장동 사업이 진행됐다’는 검찰 주장에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안정적 사업을 위해 지시한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정면 반박했다. 화천대유에 유리하게 작성된 이른바 ‘7개 독소 조항’은 성남시의 지시·방침을 반영한 것에 불과해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배임 등 주요 혐의를 놓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양철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첫 재판에는 김 씨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남욱 변호사, 정민용 변호사 등 ‘대장동 4인방’이 모두 참석했다. 그동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던 정영학 회계사도 이날 모습을 보였다. 대장동 핵심 관계자 5명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씨 변호인은 이날 공판에서 “독소 조항이라고 7개 조항이 언급되는데 이는 대장동 개발 사업의 기본 구조”라며 “당시 정책 방향에 따라 성남시의 지시·방침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앞서 대장동 개발에 대해 “그분의 사업 방침에 따랐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이날 이 전 성남시장이라고 특정한 것이다.
검찰은 이들이 공모해 지난 2015년 대장동 민관 합동 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화천대유에 유리하도록 ‘독소 조항’이 들어간 공모 지침을 작성하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소 조항에는 건설 사업자의 사업 신청 자격 배제, 공사 추가이익 분배 요구 불가 조항 등이 포함돼 있다. 김 씨 측은 해당 조항에 대해 단순히 성남시 정책 공고를 따른 것인 만큼 배임 의도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 정 변호사도 김 씨 측과 마찬가지로 서로 공모한 사실이 없고 배임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700억 원대 뇌물 약속 혐의에 대해 유 전 본부장 측은 “상호 간에 농담으로 비용 계산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 측도 “(공소장에) 어떤 식으로 4인방과 공모했는지 전혀 특정돼 있지 않고 공모 지침서 역시 공사의 이익을 위해 작성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검찰 수사에 기초가 된 ‘정영학 녹취록’을 제출한 정 회계사는 이날 처음 재판에 출석해 “공소 사실에 대해 실질적으로 다 인정하고 물의를 일으켜 너무 죄송하다”며 다른 입장을 보였다.
‘정영학 녹취록’을 둘러싼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날 선 공방도 이어졌다. 녹취록을 넘겨받은 변호인은 “녹취록을 제공한 정 회계사도 검찰이 제출한 녹취록이 원본 파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검찰은 포렌식 등을 통해 제출한 파일이 원본과 동일한지 입증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녹취 파일이 유출될 수 있다는 검찰 측 우려는 이해하지만 피고인과 변호사에게는 제공돼야 한다”며 피의자의 방어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달 17일 대장동 개발 사업 실무를 맡았던 한 모 공사 개발사업2팀장을 증인으로 불러 심리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국민의힘은 김 씨 측으로부터 배임 혐의와 관련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언급이 나온 것을 두고 “몸통은 이재명이라는 자백”이라며 특검 수사를 촉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시장의 사적 지시가 아니었다. 성남도개공의 지침”이라고 반박하며 서로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