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음성확인제) 효력 정지 신청이 연이어 제기된 상황과 관련,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재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명확하게 단답식으로 답하라'고 하는 과학적 사고가 부족한 판사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면서 답답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국내 대표적인 감염병 전문가로 꼽히는 이 교수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코로나19 유행 이후에 2년 동안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은 비과학과 싸워야 했고, 정치편향과 싸워야 했고, 안티박서(백신접종 반대론자)들과 싸워야 했다"며 "감염병 재난의 시기에 방역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이나 감염병 전문가들의 소통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이 교수의 이같은 언급은 지난 7일 서울행정법원에서 방역패스 효력 정지 사건을 심문한 재판부를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지난달 31일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일반 시민 1,023명이 대형마트·식당·카페 등 17종에 적용되고 있는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복지부 장관과 질병관리청장, 서울시장을 상대로 집행정지를 신청한 것에 따른 첫 심문기일이었던 이날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측 공무원에게 "방역패스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이 뭐냐. 단답식으로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교수는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소통해야 하고, 공무원이나 전문가를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참을성이 부족한 정치인들을 인내심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며 "불확실한 재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명확하게 단답식으로 답하라 하는 과학적 사고가 부족한 판사들을 이해시켜야 하고, 선정적인 기사를 써야만 하는 일부 기자들을 달래야 한다"고 상황을 짚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극한 상황에서 소통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은 그런 훈련을 거의 받지 않아 개인이 열심히 몸으로 틀어막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친다. 그런데 지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야속하다"고도 적었다.
앞서 법원은 지난 4일 학부모단체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 등에 대한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청소년의 학습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제기된 소송에서 법원이 학부모 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에 즉시 항고했지만, 현재 이들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은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 교수는 법원의 인용 결정 당시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번 인용 때문에 법원이 이제 방역정책의 최종 심사권한을 가지게 될 것"이라면서 "방역정책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었다는 것에 심히 우려를 표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