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제국의 귀환 美 vs 대국굴기 中.. 위기의 '한국통상'[양철민의 경알못]

美, 인도태평양 지역 통상정책 새판 짜기 한창

IPEF 통해 아세안과 인도 중심의 中 포위망 구축

시진핑 3연임 통해 '일관된 대국굴기' 선보이는 中

아세안 지역 영향력 확대.. 美의 영역침범 용납치 않아

위기의 한국 통상.. 기술패권 위해 美 손 잡아야


**'양철민의 경알못’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경제 기사를 썼지만, 여전히 ‘경제를 잘 알지 못해’ 매일매일 공부 중인 기자가 쓰는 경제 관련 콘테츠 입니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국이 보다 강화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커트 캠벨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이달 초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주최 행사 강연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은 전통적인 무역을 넘어 디지털 및 기술표준화 등을 포함해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인도태평양조정관은 바이든 정부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지난해 초 신설된 자리로 ‘아시아 차르(Tsar)’라고도 불릴 정도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와 관련한 미국 고위급 인사의 발언이 이뿐만이 아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를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이 말했듯이 정말로 미국은 돌아왔고, 그게 동남아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밝히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귀환’을 천명하기도 했다.

‘제국의 귀환’노리는 美.. 中에 가로막히나


다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 같은 ‘영향력 복원’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가능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우선 동남아는 중국 영향력 하에 있다는 것이 경제 및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라, 미국이 중국의 영향력을 뛰어넘기는 힘들 것이라는 현실론이 제기된다. 실제 무역협회가 지난해 내놓은 ‘한국형 가치사슬의 구조변화 및 우리의 과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의 국내생산에서 중국 물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세안의 맹주인 인도네시아가 17.0%인 것을 비롯 베트남(26.3%), 필리핀(22.1%), 라오스(32.2%), 캄보디아(44.4%) 등이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2년새 이들 국가의 중국 의존도는 인도네시아가 2.4%포인트 증가한 것을 비롯해 베트남(4.6%p), 필리핀(3.5%p), 라오스(11.4%p), 캄포디아(16.7%p) 등 대부분이 크게 늘었다. 경제부문만 놓고 보면 아세안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미국을 크게 상회하는 셈이다.

여기에 1당 독재에 기반한 중국의 안정적인 권력체제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그 중심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있다. 올 10월과 11월에 열리는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당 총서기직 유임이 결정될 경우, 중국의 일관된 대외 전략은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시 주석은 20차 당대회에서 총서기로 재선출되고 내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할 경우 완벽한 장기집권 체제를 갖추게 된다. 중국이 자국기업 육성을 위한 우회 보조금, 인력 빼가기 및 기술탈취 등 자유무역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일삼고 있지만 이 같은 기조가 향후 10년 이상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에 대부분 국가들이 ‘낮은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반면 미국은 4년 또는 8년마다 대통령이 바뀌면서 ‘정책 일관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취임 직후 미국 등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며,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미국의 통상정책이 바뀔 수 있다는 ‘불안’을 주변국들에게 심어줬다. 무엇보다 TPP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이 창립을 주도한 통상협력체라는 점에서 각국이 느끼는 당혹감은 상당했다. 이후 TPP는 일본이 주도하는 CPTPP로 명칭을 변경해 2018년 공식 출범했지만, 미국이 빠진 ‘불완전한 경제협정’이라는 시각이 여전하다. 여기에 중국이 지난해 9월 CPTPP 가입을 신청하며, 아세안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중국의 움직임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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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통상정책이 ‘자국중심’이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국가안보의 위협’이 될 경우 해외물품 수입을 제한토록 한 무역확장법 232조다. 미국이 자국 철강기업 보호를 위해 수입산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물량 쿼터를 도입토록 한 근거 조항 또한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점에서, 관련 법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잣대가 제멋대로라는 비판이 꾸준하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같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러스트밸트’를 비롯한 철강 노조가 강한 지역의 지지를 얻은 반면, 글로벌 자유무역기조는 크게 훼손 시켰다.

문제는 이 같이 ‘그때그때 다른’ 미국의 무역원칙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여전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G20 정상회의에서 유럽연합(EU) 산 철강에 부과했던 25% 관세 철폐를 약속했다. 또 주요 동맹국인 일본과 영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철폐 작업 또한 진행중이다. 반면 중국산 철강에 대해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더러운 철강(dirty steel)’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등 관련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모습이며, 한국산 철강에 대해서는 2018년 부과한 ‘직년 3년 평균 물량의 70% 쿼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비록 중국의 글로벌 무역질서 훼손에 반발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식물화’에 결정타를 날린 곳 또한 미국이다. 미국 중심의 통상질서에 대한 각국의 의구심이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美와 함께하는 통상전략 만들어야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전문가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통상정책 판 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또한 논리적 근거가 비교적 확실하다. 미국이 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통상정책과 관련해 ‘갈 지(之)’자 행보를 보일 때가 종종 있지만, ‘중국견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첫손에 꼽힌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 제제’ 등 동맹국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숨통을 틀어막았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주변국과 동맹을 강화하는 ‘포위망 전략’을 기반으로 중국을 옥죄고 있다. 중국이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 진영에 크게 위협이 되고 있는 만큼 이를 제재해야 한다는 미국 정치권의 인식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세간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오바마 행정부가 트럼프 정부 보다 먼저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기 위한 각종 조치를 내놓았을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미국의 중국 봉쇄 조치는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경제 틀(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이라는 용어를 첫 언급한 이후, 미국은 아시아 지역 ‘통상 새판짜기’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일본·한국·인도를 잇따라 방문한데 이어, 같은 시기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잇따라 방문하며 동북아는 물론 아세안 주요국에 ‘우리 편에 서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

러몬도 장관은 당시 싱가포르를 방문해 “성장과 기술 혁신이 매우 많이 이뤄지고 있는 이때 미국은 그러한 동반자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더 많이 존재하기를 원한다”며 기술부문에서 인도태평양 지역과의 협력 강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오스틴 로이드 국방장관이 지난해 7월 싱가포르·베트남·필리핀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해 8월 싱가포르·베트남을 차례로 방문한 것 또한 이 같은 IPEF와 관련한 큰 그림 하에서 진행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이 갖고 있는 ‘기술 우위’ 유지를 위해서라도 미국을 중심 축으로 한 통상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와 여타 정보통신기술(ICT)은 미국이 정밀타격을 가할 경우 빠르게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글로벌 반도체 생산 장비 1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3위 업체인 램리서치는 미국 기업이며 ASML(네덜란드)과 도쿄일렉트론(일본) 등은 미국 우방국 소속이다.

무엇보다 2020년 기준 국내에 수입된 반도체 장비 중 도쿄일렉트론 등을 보유한 일본 비중이 39.3%(약 30억2,000만달러)로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이 21.9%(16억9,000만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2020년 국내 반도체 소재 수입액은 총 92억2,400만 달러 규모로 이 중 일본(38.5%, 35억 5,000만달러)과 미국(11.3%, 10억4,600만달러)이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반도체 자급률 제고를 목표로 한 ‘중국 제조 2025’가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에 순식간에 무너진 것은 이같은 우려가 ‘기우’ 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3년간 중국내에서 최소 6개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들 프로젝트에는 정부 지원금을 바탕으로 최소 23억 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막기 위한 미국의 ‘중국 옥죄기’는 이후에도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오늘의 세계 경제 -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리스크와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첨단 반도체 생산 기지는 중국 외 지역에 두게 하면서 중국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구도로 반도체 공급망 구조를 재편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은 중국이 반도체 첨단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디지털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철저하게 신기술 접근을 차단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통상이, 미국의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세종=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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