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이 물보다 싸다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이 친환경차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이 탈석유 시대에 대비해 강력한 수소·전기차 전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루시드모터스 등 전기차 업체가 이미 중동에 생산 설비를 짓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도 수소연료전지차와 제네시스 브랜드를 앞세워 중동 공략에 나선다.
14일 무역협회와 KOTRA에 따르면 중동 산유국들은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고 인프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중동 자동차 판매량 1위인 사우디는 오는 2030년까지 수도 리야드의 자동차를 30% 이상 전기차로 전환한다. 2025년 완공되는 초대형 스마트시티 네옴은 100% 신재생에너지로 구동한다. 특히 네옴 안의 170㎞ 규모 일직선형 도시인 ‘더 라인’에는 전기 자율주행차만 운행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사우디에 이어 중동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인 UAE에서도 친환경차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UAE 자동차 시장 현황’에 따르면 UAE 전기차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32%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UAE 정부가 적극적인 탈탄소 정책을 펴면서 전기·수소차 보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UAE의 수도인 두바이는 2050년까지 전체 전력을 75%를 청정 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두바이 클린 에너지 전략 2050’을 설정하고 2027년까지 두바이 운행 택시를 모두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차로 교체할 예정이다.
이에 완성차 업체들이 하나둘씩 중동 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사우디 국부 펀드 PIF의 투자를 받은 루시드가 대표적이다. 앤드루 리버리스 루시드그룹 회장은 지난 12일(현지 시간) 사우디 리야드에서 블룸버그TV와 인터뷰를 갖고 2026년까지 사우디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사우디 중서부의 항구 도시 제다나 네옴이 그 후보지로 거론된다. 최근 전기차 생산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전자 기기 제조 업체 폭스콘은 사우디 국부 펀드, BMW와 손을 잡았다. 폭스콘은 ‘벨로시티’ 브랜드를 발족하고 BMW 플랫폼에 기반한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수소차 및 럭셔리 브랜드를 중심으로 중동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사장급 임원이 15~22일간 문재인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동행하며 현지 시장 탐색에 나선다. 현대차는 2020년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인 아람코와 ‘수소에너지 및 탄소섬유 소재 개발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수소차 ‘넥쏘’ 2대, 수소버스 ‘일렉시티 FCEV’ 2대를 수출했다. 최근에는 고성능 라인업인 N브랜드를 사우디에 내놓았고 제네시스 G90을 출시해 프리미엄 모델 시장을 노린다.
중동에 전기차 생산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터키 현지 법인에서 생산하는 i10 등 일부 소형차를 제외하면 모든 중동 판매 차량을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생산 기지를 중동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현지 수요 증가가 관건이다. 업계에서는 현지 생산 공장을 설립하려면 내연기관차는 20만~30만 대, 전기차는 10만 대 이상 판매돼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고 보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차의 경우 생산 인력이 적게 들어가는 만큼 공장 설립 요건이 덜 까다롭지만 중동 지역 전기차 수요가 일반적으로 높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