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승려 3,7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로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 정부의 종교 편향을 주장하며 성토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여당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 등 근본적 대책을 세우고 문화유산 보존·계승을 위한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다만 현행 방역수칙상 종교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299명으로, 불교계가 코로나19의 확산 속에 방역수칙을 위반해 가며 전국승려대회를 열 명분이 약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게다가 불교계가 승려대회에서 제기한 문제점 중에선 현 정부에서 벌어지지 않은 사항도 있었다.
주최 측은 행사 도중 예고 없이 정부여당의 사과 메시지를 듣는 순서를 준비했다가 참석한 승려들의 강한 반발에 취소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단상에 오르려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반발에 발길을 돌렸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불교계에 심려를 끼쳤다”며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을 사과했다.
조계종은 이날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열었다. 조계종 승려들이 전국승려대회를 연 건 종단개혁, 불교자주화를 외쳤던 지난 1994년 이후 28년만의 일이다.
총무원장인 원행스님을 비롯해 대회에 참석한 승려들은 이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한 날 선 비판과 비난을 쏟아냈다. 원행스님은 봉행사에서 “통합과 자비, 포용의 불교는 다종교 국가인 대한민국에 종교 간 분쟁이 없는 모범국가의 토대를 제공해왔으나 지금 어디에도 헌신의 결과를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천진암과 주어사는 천주교 성지가 됐으며, 문화재보호법으로 인정받은 문화재구역입장료도 '통행세'로 치부받기에 이르렀다며 “정부가 앞장서 종교 간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부추기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정문스님은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가 고통을 감내하는 상황에 전국승려대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를 겨냥해 “대회를 열게 된 것은 그만큼 종교편향과 불교왜곡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며 “한국불교는 코로나19가 처음 확산하기 시작한 때부터 정부시책에 호응해 선제적 방역지침을 준수해왔으나 우리 불교계에 돌아온 것은 그 어느 정권 때보다 심각한 종교 편향이었다”고 지적했다.
정부를 향한 비판이 불을 뿜으며 승려대회가 막바지로 가던 중, 조계종 주지협의회장인 덕문스님이 갑자기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자신들의 입장을 받아들여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해 왔다”며 “총무원장 등 논의 끝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다만 이 자리만으로 사태가 종결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어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종무행정 관장 부처 책임자로서 일련의 일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헌법 20조에 근거해 정교분리 원칙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교계가 제기한 종교편향 관련 사례를 미리 헤아려 살피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중간에 끊겼다. 대회에 참석한 승려들이 고성을 지르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반발한 승려들이 일제히 자리를 떴고, 영상에 이어 무대에 오르려던 송 대표는 참석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대신 조계사 경내의 한켠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초 낭독하려던 원고를 읽었다. 그는 “1,700여 년 한국 불교의 역사를 헤아리지 못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사과한다”며 “대통령 의전에 있어서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해 특정 종교 편향 오해 소지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통유물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불교계와 소통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다하겠다”며 “국립공원의 관람료 논의는 합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입법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