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사납금 없는 택시 회사’로 야심 차게 출범했던 한국택시협동조합.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달 30일 서울회생법원에서 결국 파산 선고를 받았다. 최근 기자가 회사를 방문한 날도 차량 운행이 전면 중단된 택시들이 차고지에 대거 주차돼 있었다.
21일 서울경제 취재 결과 한국택시협동조합의 파산 배경에는 국회의원을 지낸 박계동 협동조합 초대 이사장과 조합원들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이사장은 부정 회계 의혹 등으로 인한 내홍으로 조합 비대위에 의해 해임된 후에도 신규 조합원 출자금으로 경영난을 극복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이사장은 지난 2020년 11월 조합이 재정난으로 회생 신청에 들어간 직후 “조합원 80명을 새로 뽑자”고 제안했다. 박 전 이사장이 지난해 2월 조합에 제시한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조합원을 새로 뽑아 2,500만 원씩 출자금을 걷는 방식으로 총 2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익명의 조합 관계자는 “어떻게 새로운 사람들에게 자본잠식으로 깡통만 남은 회사를 책임지게 하냐”며 혀를 내둘렀다.
박 전 이사장은 이에 대해 “정상화 방안이 이상적으로 이뤄졌을 때의 계획이지 현실적인 방안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이사장의 이 같은 제안 이면에는 이사장직에서 해임된 상황에서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며 조합원들을 설득해 조합 내 입지를 회복하려던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이사장은 부정 회계 의혹 등으로 내부 갈등에 휩싸이면서 지난 2018년 4월 해임됐다. 조합 관계자는 “당시 경리부장이 박 전 이사장의 제수였고 박 전 이사장이 관여한 한국택시구미협동조합의 한이섭 이사장도 처남”이라고 밝혔다. 박 전 이사장은 이에 대해 “협동조합 특성상 설립 초기에 큰돈이 들어오는데 이를 믿고 맡길 사람이 친족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신임 이사장이 같은 해 9월 조합 계좌를 열어보니 1억 2561만 원 남짓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중 1억 2500만 원은 박 전 이사장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 영입한 5명의 출자금이었고 서울서부지법은 이들을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돌려줘야 할 1억 2500만 원을 제하면 결국 61만 원 남짓이 남아있었다는 얘기다.
조합원들의 반발로 박 전 이사장이 해임되고 새로운 대표가 선출됐지만 협동조합의 경영난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후임으로 부임한 이일렬 이사장 역시 2020년 12월 횡령 등의 혐의로 형사처분을 받고 사실상 해임되는 등 혼란이 계속된 것이다. 조합 관계자는 “자금을 잘못된 방식으로 운용한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당시 정상적인 회계 처리가 어려울 정도로 자금난이 심각해 채무를 돌려막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혼란한 정국을 타 박 전 이사장은 일부 조합원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섰다. 다음 달 총회를 열고 다시 이사장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협동조합 정관에 따르면 조합원 누구나 일정 수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언제든지 총회를 열어 이사장을 해임하고 새로 선출할 수 있다. ‘새 조합원 80명’ 제안서가 나온 것은 이로부터 한 달 뒤였다. 하지만 이 역시 법원에 의해 좌초됐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4월 해당 총회 요건인 정족 수 등에 하자가 있었다고 보고 무효로 판단했고 같은 해 9월 박 전 이사장의 이의 제기를 기각했다. 박 전 이사장은 이에 대해 “당시 총회의 의결에 하자가 있다는 것이지 이사장직 자격 자체가 없다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이사장과 조합원들과의 갈등은 아직도 봉합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는 중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박 전 이사장이 외연 확장에만 집중했지 제대로 된 경영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은 지난 2015년 설립 당시 법정 매각 매물로 나온 서기운수를 인수하면서 출범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장은 한국택시협동조합(서울)이 서기운수를 직접 인수하는 방식이 아닌 한국협동조합연대라는 전국 단위의 조직을 따로 만들어 이를 거쳐서 인수하게 했다. 조합원들은 이 과정에서 연대가 서기운수를 인수한 금액보다 3~4억 원가량 더 비싼 액수로 인수하게 해 차익을 남겼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밖에도 조합(서울)이 한국협동조합연대와 다른 자금 문제가 얽혀 아직도 받아야 될 돈을 못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 전 이사장은 한국협동조합연대를 통해 구미에서도 택시협동조합을 설립했는데 이때 설립 자금으로 3억 원 가량을 빌려간 뒤 갚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금액은 지난 2019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지급 명령을 받았다. 박 전 이사장은 이전에도 문정수 전 부산시장을 이사장으로 세워 부산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협동조합을 출범시켰지만 인수 대상인 신영택시의 매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5개월 만에 부산시에서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조합원들은 이와 함께 박 전 이사장이 회삿돈을 음식점, 주유소, 미용실, 유흥주점 등에 사적으로 이용한 정황을 법인카드 내역에서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이사장 측은 한국협동조합 설립 당시부터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서기운수 인수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해 직접 사재를 털었지만 이마저도 모자라 지인에게 빌리고 사채 등을 쓰는 바람에 높은 이자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협동조합이라는 이상적인 경영 시스템을 전국 택시 업계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의 조직이 따로 필요했고 3~4억 원의 차익은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연대에 지급된 돈이었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 측은 이에 대한 고발이 서울서부지검에 이뤄졌지만 각하 처분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를 포함해 조합원들이 부정 회계 의혹 등으로 고발한 14건 중 11건 역시 각하 또는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장 측은 이사장직 재임 당시에는 정상적인 경영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조합 내 일부 음해 세력이 조합원들을 선동해 갈등을 일으키면서 경영난이 촉발됐다고 비판했다. 박 전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고발이 남발되면서 제대로 된 경영 활동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박 전 이사장은 현재 서울·인천·천안에서 새로운 택시협동조합을 구상 중이다. 또 다른 조합 관계자는 “우리의 사례가 반면교사로 알려져 비슷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