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민심에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 호남에서 야권 주자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4일 20%를 넘어선 현상도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남 득표율(10.3%)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국민의힘은 고무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호남 민심이 호응하자 윤 후보는 주말 광주행에 돌입했고 비상이 걸린 민주당은 텃밭 관리에 나섰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헤럴드경제의 의뢰를 받아 지난 2~3일 전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이날 발표한 조사 결과 윤 후보는 45.7%, 이 후보는 40.0%로 집계됐다. 설 명절 이후 양강이 오차 범위(±3.1%포인트) 내에서 다투는 모습이 이번 조사에서도 재확인됐다.
그럼에도 이번에 발표된 조사 결과는 정치권을 술렁이게 했다. 지역별 지지율에서 윤 후보의 호남(광주·전라) 지지율이 26.2%로 지난 조사에 비해 10.6%포인트 뛰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리서치뷰가 UPI뉴스의 의뢰로 1~3일 조사한 결과에서도 윤 후보의 지지율은 31%로 나왔다. 같은 날 두 곳의 여론조사 기관에서 윤 후보의 호남 인기가 치솟자 이틀째 호남 지역을 돌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소식을 전하며 “호남 유권자가 이번 선거에서 개혁에 많이 힘을 보태주실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이 들뜬 배경에는 윤 후보가 역대 보수정당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강한 지지 흐름을 보이면서다. 현재의 호남 지지율이 대선 최종 득표로 이어진다면 양자와 다자로 치러진 역대 대선의 공식을 모두 대입해도 윤 후보 쪽으로 기운다. 보수정당은 지난 17대 대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호남에서 8.9%를 득표해 승리했다. 박 전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 가운데 최초로 호남에서 득표율 10%를 넘어섰다.
국민의힘은 특히 대선이 다자 구도로 치러질 경우에도 범야권에서 호남 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이긴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호남 지지율 5.2%로 4.1%를 얻은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14대 대선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호남에서 4%를 얻어 2.1%를 기록한 정주영 통일국민당 당시 후보를 이겼다. 역대 대선을 대입해볼 때 현재 윤 후보의 높은 호남 지지율이 지속되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없이도 승리가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윤 후보를 향한 호남 민심을 일시적 현상으로 일단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도 처음부터 호남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며 “호남과 별다른 접점이 없던 이 후보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는 “이낙연 후보가 선출되지 못한 것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아쉬움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내부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 측 인사들이 정세균계와 다르게 선거 지원에 힘을 덜 쏟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에 국회의원 동일 지역구 3선 금지 등 쇄신안을 들고 호남 민심을 되돌릴 계획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호남은 수도권의 종속변수로 봐야 한다”며 “호남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경쟁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와중에 윤 후보는 6일 광주 5·18민주묘지 참배 일정을 알렸다. 직접 호남을 찾아 민심을 듣겠다는 것이다. 역풍을 우려해 자세도 낮추고 있다. 장흥군을 찾은 이 대표는 “1분 1초를 아껴 우리 대한민국과 전남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내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고 호소했다. 선대본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도 여론조사에서 20%를 넘었지만 실제 득표율은 10%였다”며 “호남 민심이 계속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